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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열역학의 역사
현재 우리가 배우는 고전열역학의 기본적 개념은 17세기 초에 태동되었다.
1610년경 갈릴레오 갈릴레오(Galileo Galilei)가 물체의 온도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최초로 사용하였다. 그 전까지는 온도라는 개념이 정리되지 않았고, 뜨거움과 차가움의 변화 정도를 나타나는 도구였다.
1630년 헝가리의 페르디난드 2세(Ferdinand II)가 알코올 온도계와 가장 유사항 장치를 만들었다.
1670년 보일의 법칙이 논의되었다. 이상기체 법칙의 효시가 되었다.
1770년 영국의 조세프 블랙(Joseph Black)이 열소이론(Caloric theory)를 주장. 열은 물질의 일종이라고 간주하였다. 칼로릭원자는 너무 작아 직접 관찰할 수 없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함께 움직일 때는 '미묘하고 서로 반발하는' 유체로 기술되었다. 여기서 미묘하다는 것은 칼로릭원자는 질량도 없고 다른 물질과 일반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칼로릭은 유체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끈끈해서 느리게 흐르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일정한 조건에서는 폭발적으로 운동한다고 믿었다. 칼로릭은 다른 입자에 달라붙어 있다가 따로 떨어져 나와 순수한 상태일 때만 열의 느낌을 준다고 믿었다. 또한, 블랙은 얼음이 녹으면 고정적인 양의 열을 낸다고 예측하였다.
1789년 럼포드(B. T. Rumford)이 열소이론에 대해 반박하였다. 물이 든 통에 대포알을 담구고 드릴날로 마찰을 일으켰고, 통 안의 물을 모두 끓어 사라졌지만 대포알 부스러기 외에 다른 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반박에 의해, 열은 질량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1802년 게이뤼삭(J. L. Gay-Lussac)은 온도의 증가에 따라 기체의 부피가 선형적으로 증가함을 밝혔다. 기체의 부피가 0으로 되는 온도를 외삽하면 모든 기체에서 한 점으로 모이게 되는데 이를 절대온도라고 하였다.
1803년 존 돌턴(John Dalton)은 모든 기체는 온도의 증가에 따라 그 부피가 균일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기체가 물로 변한다는 것을 보여줌. 친구인 피에르 시몽 드 라플라스(Pierre-Simon de Laplace)와 함께 화학 반응 때 나오는 열을 측정하도록 최초의 열량계(calorimetor)를 완성. 라부아지에-라플라스 열량계에 기니피그를 넣고 기니피그 체온에 의해 녹은 얼음량과 숯불로 녹은 얼음량을 비교해서 생명체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일종의 연소 과정을 이용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1811년 아마데오 아보가드로(Amadeo Avogradro)는 모든 기체 원자(또는 원자의 조합으로 이뤄진 분자)가 전체 기체 압력에 똑같이 기여한다고 추론했다. 발표 당시에는 무시되다가 50년 후, 아보가드로 법칙을 사용해 원자량을 계산해 주기율표가 탄생한다.
1840년 줄리우스 폰 마이어(Julius von Mayer)는 체내에서 산화되는 음식(연료)가 체온을 유지하거나 운동을 하는 몸의 활동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섭취한 몸이 다른 물체에게 운동과 열을 전달하는 것을 통해, 에너지를 만들어 내거나 없애지 못하지만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환한다는 열역학 1법칙을 처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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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년 영국의 제임스 와트(James Watt)에 의해 증기기관이 개선되었다.
1824년 프랑스의 니콜라스 레오나르 사디 카르노(Nicolas Sadi Carnot)는 열기관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가역과정(reversible process) 개념을 처음 사용하여 가역적 순환공정을 고안하였다. 그것이 카르노 사이클(Carnot cycle)이다.
1850년 독일의 루돌프 클라우지우스(Rudolf Calusius)는 카르노의 연구결과를 순환공정에 응용하는 과정에서 열역학 제 2법칙을 성립시키는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폐쇄된 가역적 순환공정(closed reversible cycle)에서 dQ/T의 적분값이 0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는 동력기관의 마찰때문에 가역과정이 아닌 비가역과정(irreversible process)가 된다고 생각하고, dQ/T의 적분이 의미하는 바를 연구하였다. 이를 통해 엔트로피(entropy) 개념이 탄생되었다.
1839년~1847년 영국의 제임스 줄(James Joule)의 실험으로 일과 열의 정량적인 관계를 규명하였다. 물이 담긴 용기에 회전하는 교반기를 설치하고, 외부에서 일을 가해서 교반기를 회전시킬 수록 물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관찰하였다. 또한 전기 에너지를 열로 변환시키는 실험도 수행하였다. 이를 통해 모든 형태의 에너지는 일정량의 열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열이 물질의 일종이라고 했던 열소이론이 잘못되었음을 증명되었고, 에너지 보존 법칙인 열역학 제 1법칙이 성립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는 열역학 제 2법칙보다 시대적으로 조금 뒤늦게 정리되었다.
1873년 네덜란드의 반데르발스(van der Waals)가 반데르발스 상태방정식을 제시하였다.
1878년 미국 예일대학 교수, 죠시아 윌러드 깁스(Josiah Willard Gibbs)는 상평형의 해석에 대해 기술하였다. 물질의 잠재에너지(chemical potential), 상률(phase rule)의 개념을 도입
1886년 프랑스의 프랑코 라울(F. M. Raoult)이 상평등에 대한 기본법칙으로 사용되는 라울의 법칙을 발표
1901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길버트 루이스(Gilbert Lewis)는 혼합물의 비이상성과 그 상평형을 나타내기 위해 퓨개시티(fugacity)와 활동도(activity)의 개념 도입. 혼합물에 포함되어 있는 특징 성분이 그 혼합물로부터 이탈하려는 성향의 정도를 퓨개시티(fugacity)라고 불렀다.
1949년 미국 쉘 연구소의 레들리히(Otto Redlich)와 쾅(J. N. S. Kwong)은 반데르발스 상태방정식을 수정하여 실제기체에 좀 더 부합하는 Redlich-Kwong 상태방정식을 발표하였다. 또한 그 방정식을 이용해 fugacity 계수를 계산할 수 있는 방정식을 유도하였다.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케네스 피쳐(Kenneth Pitzer)는 실제기체의 비구심성을 나타내는 비중심인자(acentric factor, 편심 인자, 이심 인자)의 개념을 도입하여, 실제기체의 압축계수를 구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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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열역학 개념의 해설, 여상도
[2] A History of Thermodynamics, Ingo Muller
[3] 냉장고의 탄생, 톰 잭슨 지음, 김희봉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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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4. 09 작성
2019. 05. 27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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