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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열역학의 역사



현재 우리가 배우는 고전열역학의 기본적 개념은 17세기 초에 태동되었다. 


1610년경 갈릴레오 갈릴레오(Galileo Galilei)가 물체의 온도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최초로 사용하였다. 그 전까지는 온도라는 개념이 정리되지 않았고, 뜨거움과 차가움의 변화 정도를 나타나는 도구였다. 


1630년 헝가리의 페르디난드 2세(Ferdinand II)가 알코올 온도계와 가장 유사항 장치를 만들었다. 


1670년 보일의 법칙이 논의되었다. 이상기체 법칙의 효시가 되었다. 


1770년 영국의 조세프 블랙(Joseph Black)이 열소이론(Caloric theory)를 주장. 열은 물질의 일종이라고 간주하였다. 칼로릭원자는 너무 작아 직접 관찰할 수 없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함께 움직일 때는 '미묘하고 서로 반발하는' 유체로 기술되었다. 여기서 미묘하다는 것은 칼로릭원자는 질량도 없고 다른 물질과 일반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칼로릭은 유체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끈끈해서 느리게 흐르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일정한 조건에서는 폭발적으로 운동한다고 믿었다. 칼로릭은 다른 입자에 달라붙어 있다가 따로 떨어져 나와 순수한 상태일 때만 열의 느낌을 준다고 믿었다. 또한, 블랙은 얼음이 녹으면 고정적인 양의 열을 낸다고 예측하였다. 


1789년 럼포드(B. T. Rumford)이 열소이론에 대해 반박하였다. 물이 든 통에 대포알을 담구고 드릴날로 마찰을 일으켰고, 통 안의 물을 모두 끓어 사라졌지만 대포알 부스러기 외에 다른 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반박에 의해, 열은 질량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1802년 게이뤼삭(J. L. Gay-Lussac)은 온도의 증가에 따라 기체의 부피가 선형적으로 증가함을 밝혔다. 기체의 부피가 0으로 되는 온도를 외삽하면 모든 기체에서 한 점으로 모이게 되는데 이를 절대온도라고 하였다. 


1803년 존 돌턴(John Dalton)은 모든 기체는 온도의 증가에 따라 그 부피가 균일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기체가 물로 변한다는 것을 보여줌. 친구인 피에르 시몽 드 라플라스(Pierre-Simon de Laplace)와 함께 화학 반응 때 나오는 열을 측정하도록 최초의 열량계(calorimetor)를 완성. 라부아지에-라플라스 열량계에 기니피그를 넣고 기니피그 체온에 의해 녹은 얼음량과 숯불로 녹은 얼음량을 비교해서 생명체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일종의 연소 과정을 이용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1811년 아마데오 아보가드로(Amadeo Avogradro)는 모든 기체 원자(또는 원자의 조합으로 이뤄진 분자)가 전체 기체 압력에 똑같이 기여한다고 추론했다. 발표 당시에는 무시되다가 50년 후, 아보가드로 법칙을 사용해 원자량을 계산해 주기율표가 탄생한다.  


1840년 줄리우스 폰 마이어(Julius von Mayer)는 체내에서 산화되는 음식(연료)가 체온을 유지하거나 운동을 하는 몸의 활동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섭취한 몸이 다른 물체에게 운동과 열을 전달하는 것을 통해, 에너지를 만들어 내거나 없애지 못하지만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환한다는 열역학 1법칙을 처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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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년 영국의 제임스 와트(James Watt)에 의해 증기기관이 개선되었다.  


1824년 프랑스의 니콜라스 레오나르 사디 카르노(Nicolas Sadi Carnot)는 열기관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가역과정(reversible process) 개념을 처음 사용하여 가역적 순환공정을 고안하였다. 그것이 카르노 사이클(Carnot cycle)이다. 


1850년 독일의 루돌프 클라우지우스(Rudolf Calusius)는 카르노의 연구결과를 순환공정에 응용하는 과정에서 열역학 제 2법칙을 성립시키는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폐쇄된 가역적 순환공정(closed reversible cycle)에서 dQ/T의 적분값이 0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는 동력기관의 마찰때문에 가역과정이 아닌 비가역과정(irreversible process)가 된다고 생각하고, dQ/T의 적분이 의미하는 바를 연구하였다. 이를 통해 엔트로피(entropy) 개념이 탄생되었다. 


1839년~1847년 영국의 제임스 줄(James Joule)의 실험으로 일과 열의 정량적인 관계를 규명하였다. 물이 담긴 용기에 회전하는 교반기를 설치하고, 외부에서 일을 가해서 교반기를 회전시킬 수록 물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관찰하였다. 또한 전기 에너지를 열로 변환시키는 실험도 수행하였다. 이를 통해 모든 형태의 에너지는 일정량의 열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열이 물질의 일종이라고 했던 열소이론이 잘못되었음을 증명되었고, 에너지 보존 법칙인 열역학 제 1법칙이 성립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는 열역학 제 2법칙보다 시대적으로 조금 뒤늦게 정리되었다. 


1873년 네덜란드의 반데르발스(van der Waals)가 반데르발스 상태방정식을 제시하였다. 


1878년 미국 예일대학 교수, 죠시아 윌러드 깁스(Josiah Willard Gibbs)는 상평형의 해석에 대해 기술하였다. 물질의 잠재에너지(chemical potential), 상률(phase rule)의 개념을 도입


1886년 프랑스의 프랑코 라울(F. M. Raoult)이 상평등에 대한 기본법칙으로 사용되는 라울의 법칙을 발표


1901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길버트 루이스(Gilbert Lewis)는 혼합물의 비이상성과 그 상평형을 나타내기 위해 퓨개시티(fugacity)와 활동도(activity)의 개념 도입. 혼합물에 포함되어 있는 특징 성분이 그 혼합물로부터 이탈하려는 성향의 정도를 퓨개시티(fugacity)라고 불렀다. 


1949년 미국 쉘 연구소의 레들리히(Otto Redlich)와 쾅(J. N. S. Kwong)은 반데르발스 상태방정식을 수정하여 실제기체에 좀 더 부합하는 Redlich-Kwong 상태방정식을 발표하였다. 또한 그 방정식을 이용해 fugacity 계수를 계산할 수 있는 방정식을 유도하였다.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케네스 피쳐(Kenneth Pitzer)는 실제기체의 비구심성을 나타내는 비중심인자(acentric factor, 편심 인자, 이심 인자)의 개념을 도입하여, 실제기체의 압축계수를 구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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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열역학 개념의 해설, 여상도

[2] A History of Thermodynamics, Ingo Muller

[3] 냉장고의 탄생, 톰 잭슨 지음, 김희봉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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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4. 09 작성

2019. 05. 27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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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의 역사


고전 물리학

역학

코페르니쿠스

~1530

천상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지동설 구상

브라헤

~1601

30년간 사분의, 육분의로 행성 움직임 관측

케플러

~1619

케플러 법칙 발표

갈릴레이

~1642

속도, 가속도 개념 확립

뉴턴

1687

거시세계 운동방정식

전자기학

쿨롱

1784

비틀림 진자 실험, 쿨롱 법칙

외르스테드

1820

전류가 흐르는 주위의 나침반 움직임

암페어

1827

암페어 법칙, 전류와 나침반 관계

패러데이

1831

패러데이 법칙, 자석이 전기현상 만듬

맥스웰

1864

쿨롱, 암페어, 패러데이 법칙 집대성, 빛은 전자기파

현대 물리학

상대성 이론

마이컬슨, 몰리

1887

빛의 매질(에테르) 찾는 실험, 광속은 일정(역학과 전자기학 간 모순)

아인슈타인

1905

공간과 시간이 같다는 특수상대성 이론(E=mc2), 일반상대성 이론(블랙혹, 중력파, 우주론)

양자역학

크룩스

1869

크룩스관(음극선관) 발명

뢴트겐

1895

크룩스관 실험 중 엑스선 발견

베크렐

1896

형광물질, 인광물질로 방사선 발견

J.J 톰슨

1897

전자 발견, 톰슨의 원자모형 

막스 플랑크

1900

흑체복사 곡선, 빛의 양자화

러더퍼드

1911

원자핵 발견

보어

1913

보어의 원자모형 발표, 선스펙트럼

슈뢰딩거

1926

미시세계 운동방정식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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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23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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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란?


18세기의 열소이론(Phlogiston theory)

열은 높은 온도의 물체에서 낮은 온도의 물체로 저절로 흐르는 열소(Phlogiston)에 의한 현상이라는 지금은 폐기된 이론을 열소이론이라 한다.


'불에서 나오는 열이 무엇일까?'라는 답을 얻기 위해 '열소(Phlogiston)'라는 개념을 도입했었다. 

17세기, 연소에서 열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열소이론이 도입. 당시 열소는 질량과 구별되는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질량보존법칙처럼 열소도 보존되고, 물체가 불타면 물체 안에 있던 열소가 방출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소는 질량이 없는 기체로 액체나 고체의 기공을 통해 물질을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열에 관련된 많은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 거의 100년간 유지되었다. 


19세기 중엽, 열이 물질이 아니라 역학적 현상임이 밝혀져 옳지 않다고 증명되었지만, 

19세기 말까지 과학자들 사이에서 거론되었다. 



열소이론의 설명 예

  • 열소는 서로 척력을 작용해서 뜨거운 물의 열소가 시간이 흐르며 저절로 공기로 밀쳐져 나가면서 물이 식는다. (중력에 의해 작용하는 만유인력과 달리, 열소는 서로 척력이 작용한다고 생각)
  • 온도가 높아지면 기체가 열소를 흡수하여 부피가 커진다. 
  • 카르노(Carnot)는 열소이론으로 그의 카르노 열기관이 동작하는 이치를 설명하였다. 
  • 뉴턴이 등온과정이라는 가정 하에 공기 중에 소리의 속도를 계산했었다. 이를 라플라스가 열소이론을 이용하여 단열과정이라는 가정으로 확장해 수정하여, 열소이론의 성공을 이끌었다. 



1798년, 럼퍼드 백작(벤자민 톰슨)이 대포의 포신을 제작하면서 쇠를 깎아도 발생하는 열량이 줄어드는 대신 늘어나는 것을 보고 열소가 보존되지 않는다고 주장. 


1884년,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줄(Joule)이 '마찰'과 열소의 관계에서 착안한 실험장치를 통해 열과 일이 동등하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하면서, 일을 해줘서 열이 생성되는 것을 통해 물질 내부에 열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열소이론이 소멸됨. 줄의 실험으로 1 칼로리의 열이 4.16 줄의 일에 해당하는 것을 보였다. 



열에너지

계의 열에너지는 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구성입자들이 벌이는 무질서한 운동의 운동에너지이다. 

열의 단위: 에너지 단위 W


온도

계의 온도는 계의 구성입자 하나 당 평균 운동에너지에 비례

온도의 단위: 평균 에너지의 단위


온도 눈금

  • 절대 온도의 0 K: 물질의 운동이 전혀 없는 상태을 기준
  • 섭씨 온도의 0 oC : 물의 어는점을 기준
  • 화씨 온도의 0 oF : 얼음과 물, 염화 암모늄을 1:1:1의 비로 섞은 후 그 온도를 기준


열의 이동

  • 전도(Conduction) : 물질은 이동하지 않고 열만 이동(고체 내부에서 열의 이동)
  • 대류(Convection) : 물질이 열과 함께 이동 (액체와 기체에서 열의 이동)
  • 복사(Radiation) : 에너지가 전자기파에 의해서 이동

Radiation은 복사, 방사선, 전자기파 등으로 해석됨.

물체의 열에너지가 방출될 때 전자기파는 주로 적외선이다. 

적외선은 분자들을 무질서하게 진동하게 만들어, 물체의 온도가 상승하게 된다. 

한편, 자외선은 분자 내부에 흡수되어, 분자 내부에너지를 증가시킨다.   



열적 평형

뜨거운 물체와 같이 수많은 구성입자들로 이뤄진 계를 열역학적 계라고 한다. 

열역학적 계에서 열에너지는 끊임없이 이동한다. 

열에너지는 높은 온도의 열역학적 계에서 낮은 온도의 열역학적 계로 알짜 이동한다. 

열에너지의 알짜 이동이 없을 때, 두 열역학적 계는 열적 평형을 이룬다고 말한다. 

두 열역학적 계에서 입자 하나당 평균 열에너지가 같을 때는 열에너지의 알짜 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열역학 제0법칙 : 열적 평형


열팽창

대부분의 물체는 온도를 높이면 팽창한다. (예외, 섭씨 0도에서 4도 사이의 물)



열현상

기체운동론


보일-샤를의 법칙

기체를 가열하면 온도, 압력, 부피가 서로 상관관계를 갖고 바뀐다. PV/T = 일정


보일의 법칙 : 기체의 온도가 일정하면 PV=일정

샤를의 법칙 : 기체의 압력이 일정하면 V/T = 일정


19세기 초, 기체에 대한 법칙들을 기체는 무수히 많은 구성 입자(분자)들로 이뤄졌다는 가정에 의해 설명하는 시도. 당시 분자의 존재를 확실히 확인하지 못하였다. 기체에 대한 현상을 구성입자들의 운동으로 설명하려는 기체운동론.

기체운동론은 영국의 물리학자 맥스웰에 의해 획기적을 발전하였다. 


오스트리아 출신 볼츠만이 통계역학을 성장시켰다. 


기체는 수많은 구성입자들이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계라고 가정

이상기체(구성입자의 크기가 0, 탄성충돌 외 상호작용이 없음)

이상기체의 상태방정식 PV=nRT


열물리

대상 : 열과 연관된 현상

방법 : 실험에 의해 규칙성 발견 (ex 보일-샤를 법칙)


통계물리

대상 : 수많은 입자로 구성된 열역학적 계

방법 : 뉴턴의 운동법칙을 적용하고 통계적 방법 사용 (ex. 이상기체 방정식)



내부에너지

열역학적 계의 구성입자들이 지닌 에너지의 합

이상기체의 내부에너지 E = (3/2)*N*k_b*T

실제기체의 내부에너지는 구성입자들의 운동에너지와 퍼텐셜에너지의 합.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부 에너지의 증감은 알 수 있다.  



열역학적 계가 외부와 에너지를 교환하는 방법:

1. 압력이 P인 열역학적 계의 부피가 dV만큼 바뀌면, dW = PdV. 

W>0이면 내부에너지가 감소하고, W<0 이면 계의 내부에너지가 증가한다고 보통 정의한다. 


2. 열역학적 계를 더 높은 온도의 다른 열역학적 계와 접촉시키면, dQ=C*dT

Q>0이면 내부에너지가 증가하고, Q<0이면 계의 내부에너지가  감소한다고 보통 정의한다. 


물체의 열용량

물체의 온도를 dT만큼 올리는데 Q만큼의 열량이 필요하면, 열용량은 C = Q/dT

물체의 온도를 1 K 올리는데 필요한 열량. 



물질의 비열(고체와 액체)

단위질량당 열용량. c = C/m = Q/(m*dT) 

단위 몰(mole)의 물질당 비열을 몰비열이라고 한다. (참고. 아보가드로 수. 6.02214*10^23 mol^-1)

 

물질의 비열(기체)

고체의 비열은 물질마다 다르지만,

기체의 비열은 분자에 속한 원자의 수가 같으면 분자의 종류에 관계없이 모두 거의 같다. 

기체의 비열은 이상기체의 비열과 거의 같다. 


기체의 비열은 부피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정적비열과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정압비열 

정압비열이 정적비열보다 크다.  



기체상수 R = N*k_B = 8.31 J/(mol*K)


Q = dK = W = (3/2)*n*R*dT + PdV =  (3/2)*n*R*dT + n*R*dT = (5/2)*n*R*dT

이상기체의 정압 몰비열 : c_p = Q / (n*dT) = (5/2)*R


표준상태(1기압, 섭씨 0도)에서 기체 1 mol의 부피는 22.4 L 이다. 







로버트 보일

아일랜드, 1627-1691 (참고. 아이작 뉴턴 1643~1727)

연금술의 영향을 받았으나, 현대 화학의 기초를 닦음.

1662년 현대적인 과학적 실험방법을 이용해 보일의 법칙을 끌어냄.


자크 샤를

프랑스, 1746-1823

샤를의 법칙은 1802년 게이-루샥이 처음 발표하였으나, 그가 발견의 공로는 샤를에게 돌렸다. 

1783년 최초로 수소를 채운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럼퍼드 백작(벤자민 톰슨)

영국, 1753~1814

미국에서 출생한 영국인으로 물리학자이자 발명가

미국 독립 전쟁에 영국군으로 참전

19세기 열역학의 혁신에 크게 기여한 물리학자


제임스

영국, 1818~1889

열과 일 사이의 관게를 실험으로 알아내어, 열역학 제1법칙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일의 SI 단위로 그의 이름인 J(줄)이 이용된다.

켈빈 경이 절대온도를 수립할 때 함께 연구하였다. 

저항을 흐르는 전류가 발생시키는 열을 줄열이라고 부르고, 줄열을 계산하는 법칙을 줄의 법칙이라고 한다. 

줄은 1884년 


켈빈(Kelvin) 경

영국, 1824~1907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을 수립하는데 공이 큼

온도에 하한선이 있다는 것은 켈빈 경 이전에도 알려져 있었으나, 그것이 정확히 섭씨 영화 273.15도라고 밝혔으며, 절대온도의 단위로 그의 이름이 이용됨.

영국과 대륙을 잇는 전신 장치를 개발한 공로로 1866년에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고 1892년에는 열역학에 기여한 공로로 남작의 작위를 받음. 1907년 사망한 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위치한 뉴턴의 묘지 옆에 묻힘.

정확하게 동작하는 나침판을 제작


제임스 맥스웰

영국 스코틀랜드, 1831-1879

전기학과 자기학을 통합하여 전자기학을 집대성하고 전자기파를 이론으로 예언함. 

전자기학 → 맥스웰 방정식 4개(전기장에 대한 가우스 법칙, 자기장에 대한 가우스 법칙, 자기장에 대한 암페어 법칙, 전기장과 자기장을 연결하는 패러데이 법칙) (참고. 역학 → 뉴턴의 운동법칙)

볼츠만과 함께 기체 운동론의 통계역학적인 수단인 맥스웰-볼츠만 분포를 수립함.
1861년 최초 천연색 사진술을 개발.
물리학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 3명(17세기 뉴턴, 19세기 맥스웰, 20세기 아인슈타인)


 


참고

[1] 물리학1, 인하대학교 차동우 교수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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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1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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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제 침략기간(1910~1945)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병조약(韓日合倂條約)이 체결되어 경술국치(庚戌國恥)가 일어났다. 


1913년 청계천 정비를 시작하였으며

1913년 03월부터 1914년 09월에 철도호텔이 준공되었다. 

철도호텔은 국내 세번째 서양식 호텔이었다. 독일 Georg de Lalande가 설계하였고, 일본 시미즈구미(清水組, 현재 清水建設 Shimizu corporation)가 시공하였다. 운영은 일본 국책회사인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滿州鐵道株式會社, 줄여서 만철회사)이 하였다. 일본 정부는 만철회사에 조선철도 운영을 위탁하여, 만철회사가 조선철도국을 직영으로 운영하였다. 철도호텔에는 온수난방 방식을 적용하였고, 고가탱크방식, 객실 별 현대실 화장실 등 위생기구를 설치하였다. 철도호텔은 195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1914년~1918년 제1차 세계대전)


1920년 조선은행이 준공되었다.

조선은행은 연면적 2,500평 규모로 미국 Kewanee社의 2.5 Ton/h 용량 연관식(煙管式) 보일러를 설치하였다. 급수펌프는 Washington社 2대를 운용하였다. 2세주 및 5세주 주철 방열기로 2관식 증기난방을 하였다. 지하 금고에는 환기 설비를 도입하였다.  

 

1925년 YMCA회관에 체육관과 부속건물을 증축하면서, 유연탄을 사용하는 미국 Kewanee社의 보일러를 도입했고, 수세식 양변기(sitting toilet)을 설치하였다. 양변기 사용이 낯설어서 파손이 잦아지자, 일부는 수세식 좌변기(squatting toilet)으로 교체되었다. 중앙YMCA회관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현재 서울 YMCA 건물은 1967년에 재건된 것이다. 


1926년 조선총독부가 건설되었다. 


철도호텔을 설계하였던 독일 Georg de Lalande가 기초설계를 하다가 설계를 완료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일본 노무라 이치로(野村 一郞)와 고쿠키(國技博)가 계승하여 설계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일본과 식민지중 최대 건축물로, 동양 최대 근대식 건축물이었다. 

조선총독부에는 일본 다구마(大熊)社의 수관식 보일러를 설치하여 증기난방을 하였다. 

 

1926년 경성부청(京城府廳)이 준공되었다. 경성부청은 현재의 서울특별시청사 역할을 하였으며, 2016년 현재 서울도서관으로 사용중이다. 


기본설계는 일본 사사 게이이치가 하였고, 실시설계는 이와즈키 요스유키하였다. 지하 1층, 지상 3층. 

서울시 청사는 단관식 증기난방을 하였으며, 일본제 좌변기 및 시스턴 소변기가 설치되었다. 



1930년 10월 미쓰코시(삼월 三越)백화점 경성지점(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 구관)이 완공되었다.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지점은 냉난방 및 완전한 급배수시설의 최초 백화점이었다. 좌변기(동양식 대변기)와 하이 탱크형 소변기가 설치되었다.  



1935년 조선저축은행 본점



미쓰코시 백화점 옆에 건설되었다. 지금 SC제일은행 본점이다. 

최초의 All air system을 갖춘 건물이다. 

배관재는 동관/급수급탕, 냉난방, 우수배관을 하였고,

환기덕트는 기둥 내부, 엘리베이터 후면 및 계단실 사이에 설치하였다. 

냉열원은 증기분사식 냉동기를 사용하였다.

공조기는 3대, 전관은 3개 zone으로 운영하였다. 



3. 해방/전쟁/복구/올림픽 기간(1945~1988)

1945년 8월 15일 광복하였고,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정부가 대한민국 수립을 선포하였다. 


(1946년 미국 Carrier가 흡수식냉동기를 개발하였고,

1947년 일본 도시바(東芝)社는 전기냉장고를 발매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58년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 복구



전쟁 직후 정부청사였던 중앙청(옛 총독부 건물)은 내부가 불타고 부서져 당장 활용하기 어려웠다. 

복구공사 설비 설계는 한규승, 이홍남 등 한국인이 참여하였다. 조선총독부에 설치되어있던 일본 다구마(大熊)社의 수관식 보일러가 미국 Kewanee社의 보일러로 교체하였다. 완전한 공조설비를 갖췄다.  



동진주물이 생산한 최초의 국산 2주형 방열기를 설치하였다. 

1995년 김영삼 정부때 철거하였다. 


1961년 미국 대외원조처(USOM)과 대한민국 정부청사 쌍둥이 건물(현재 미국 대사관 건물,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이 완공되었다. '한국인의 손으로 지어진 최초의 정부청사 건물'이다. 



최초의 Turn-key 공사였으며, 건물 전체에 공조를 하는 지상 8층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USOM에서 건물 설계를 할 때 동일하게 설계해서, USOM 건물 옆에 한 채 더 지어서 정부청사 건물로 활용하였다. 

설계와 시공은 각각 미국의 태평양건축 엔지니어(PA&E)社와 빈넬(Vinnel)社가 맡았다. 정부청사로 활용된 건물은 5백만달러를 미국원조를 받고, 필리핀 기술로 건설되었다. 건축 당시 빈넬社의 주임기사로 있던 이용재(李龍在 1897 ~ 1974)가 현장에서 건축기사로 실제 건축을 주도하는 등 이 공사 참여로 경험을 쌓은 기술자들은 이후 냉난방설비공사에 단독참여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설비기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 예로, 한신공업사(현재 한신보일러)은 1960년에 설립되어 산업용 보일러, 1968년 무연탄 및 오일용 수관식 보일러, 1972년 노통연관식 보일러, 1979년 폐열회수보일러를 생산하였다.  


1961년 마포아파트가 착공하여, 1962년 12월 1차 준공하였고, 1964년 2차 완공하였다.


최초의 단지형태의 6층 6개동 450호(9평형 342호, 12평형 72호, 15평형 36호) 아파트였다. 

고가탱크 방식으로 급수하였고, 지하 저수탱크는 1000 m3 규모였다. 난방 및 급탕은 연탄보일러로 하였다. 하이탱크형 좌변기(동양식 대변기)를 설치하였고, 일부 가구에서는 양변기를 설치하였다. 평면산화식 정화조를 설치하였다.   설계당시 당초 계획은 10층규모의 엘리베이터를 적용하고 중앙난방 시스템을 적용할 예정이었으나, 6층규모에 엘리베이터 미설치, 개별 연탄보일러난방으로 수정되었다. 연탄가스에 대한 불안감때문에 실험용 쥐로 안전성 실험을 통해 안정성을 검증하였으나, 1962년 12월 초기입주율이 10% 이하였다. 겨울철에 입주한 세대가 적다보니 수도 와 난방관이 동파되기도 하였다.  



참고자료

[1] 기계설비의 날 세미나 자료집, 2016,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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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7. 21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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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건축기계설비 역사 - 1


역사를 말하기 전에, '기계설비'의 개념을 잡고가자. 기계설비와 건설은 땔래야 땔 수 없는 것이기에 건설의 개념도 살펴보자. 


건설이란, 인간 생활을 영휘하기 위하여 건축물이나 각종 사회기반시설조성하는 과정이나 기술 방법이다. 

건축물이란, 인간의 생활과 작업, 활동 등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는 구조물이다. 


기계설비에는 건축기계설비, 건설기계설비, 산업기계설비로 나눌 수 있다. 


건축기계설비는 건축물에 적용된 기계설비로서, 공조(空調)설비, 냉난방(冷煖房)설비, 냉동(冷凍)설비, 위생(衛生)분야의 급수(給水)설비, 배수(排水)설비, 방재(防災)설비가 있다. 건축설비로서, 건축전기설비와 건축기계설비로 나뉜다. 


건설기계설비는 건축물을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기계설비들을 일컫는다.  


산업기계설비는 산업활동을 위해 사용되는 기계설비들을 말한다. 금속제조기계, 섬유제조기계, 제지기계, 광산기계, 농작업 및 농산기계, 운반하역기계, 전기기계, 화공기계, 인쇄기계, 인쇄기계, 유체기계 등이 있다. 


영어로 쓰면, 구분이 명확해지는데 

건축기계설비는 Building Mechanical Facility 혹은 Building Mechanical Service System인 반면,  

건설기계설비는 Construction Equipment 이고, 

산업기계설비는 Industrial Machinery Facility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기계설비는 건축기계설비를 지칭한다. 


기계설비란, 건축물을 쾌적하고 건강하고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설비이다.



1. 조선, 대한제국 기간(1876~1897~1909)

우리나라의 기계설비의 역사는 개항(開港)부터 시작한다. 


1876년 10월 부산항이 개항하고 잇따라

1880년 05월 원산항이 개항하며

1883년 01월 인천항(제물포)이 개항한다.[각주:1]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들은 대한제국 시절, 인천항(제물포)와 서울(한성)을 중심으로 건설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고종과 명성황후가 청(淸)의 위안스카이에게 병력을 요청한다. 갑신정변 이후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텐진조약에 따라, 청나라 군대가 대한제국에 들어오면서 일본군도 대한제국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청나라 군대는 육상을 통해 인천과 천안에 진주했지만, 일본군은 해상으로 바로 인천으로 들어와 서울로 진주했다. 


일본은 인천항 개항 이전인

1882년 04월경 중앙동 1가에 2채 목조 가건물을 지어 영사 업무를 보기 시작하다가, 

1883년 11월부터 2층 건물을 완공하고 정식 영사관을 개설했다. 영사관 구내에 부속 경찰서와 감옥을 설치하였다.


1883년 인천항(제물포)이 개항 이후 이듬해 인천제물포각국조계장정(仁川濟物浦各國租界章程)이 체결됨에 따라 일본 외에도 청국, 영국, 러시아 등도 인천에 영사관을 건립하였다. 이로서, 외국인이 거주하기위해 주택과 건물들을 신축되었다. 


1884년 인천 송학동에 독일 마이어무역상사(世昌洋行)의 사택이 건설된다. 

외관 및 구조가 한옥과 다르고, 수세식(水洗式)변기가 설치되는 등 편리하였다. 양옥(洋屋)에 대한 관심이 유발되었다.  

1883년 4월(1887-1888) 인천 중구 중앙동에 대불(大佛)호텔이 건설되었다. 

일본 호리리키타로(掘力太郞)이 건립하였다. 대불호텔은 3층 벽돌조 건물로 침대실 11개실, 다마마실 24개실로 구성하여, 인천항(제물포)을 통해 입국한 외국인과 일본인들이 이용하였다. 영어로 예약을 접수하고, 미국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셀러(H.G.Appenzeller)이 1885년 4월 5일 인천방문시 1주간 대불호텔에서 체류했다고 한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 후 쇠락하여 1918년 중국인에 매도되어 중화루(中華樓)가 되었다가, 1978년 철거되었다.   

대불호텔에는 수세식 변기(squatting & sitting toilet)가 설치 되었다. 


1890년 러시아 공사관 신축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증기난방시설의 르네상스풍 건물이었다. 고가탱크 방식의 급수설비를 갖췄다. 


1896년 프랑스 공사관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하며, 붉은 벽돌 조적조 구조로 지어졌다. 

심정호 펌프(deep well pump)-고가탱크-하향식 공급배관으로 구성되어 주방과 욕실에 급수하였다. 

프랑스식 현대실 건물이었다. 한국전쟁 시 소실되었다.


1898년 5월 종현(鐘峴)성당 (현재 명동성당)

종현성당은 1882년 설립되었으며, 한반도 최초의 본당이었다. 

1887년 프랑스 Eugene Coste 신부가 종현성당의 건축물을 설계 및 감독하였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이 분리되었고, 수세식 변기와 세면기가 설치되었다. 


1900 ~ 1910년 석조전(石造殿)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이다. 

증기난방 시설의 오피스 건물이었으며, 온냉수를 사용하는 욕조, 변기, 세면기를 갖춘 완전한 욕실을 갖추고 있다. 

영국 J.R.Harding이 기본설계를 하였고, 영국 Lovell이 내부설계를 맡았다. Crittall &Co(창호, 조명, 난방기구)와 Mapls &Co(가구, 내부 장식)이 시공하였다. 


1898년 01월 26일 미국 H. Collbran의 조언을 받아 대한제국 정부는 이근배, 김두승의 이름으로 한성전기회사(漢城電氣會社)를 설립하였다. 발전소에서 배전설비를 이용해 경성일대에 전력공급하고, 전등과 전차(電車)를 도입하였다. 한성전기회사는 현재 한국전력공사의 전신이다. (국내 최초 전기점등은 1887년 3월 6일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의 윌리엄 멕케이(William Mckay)가 석탄연료 발전기를 가동해 경북공 내 건청궁에서 이뤄졌다. 1897년에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전화기가 설치되었다. 1876년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지 22년 후다.)


 


1903년 12월 9일에 미국 H. Collbran과 H.R Bostwick은 고종황제로부터 '상수도 부설 및 시설 경영에 관한 특허'를 받아, 1905년 08월에 영국인이 설립한 조선수도(朝鮮水道)회사에 특허를 양도하였다. 하수도와 달리 상수도의 송, 배, 급수는 모두 압력차에 의해 이뤄지며 펌프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전력사업이 상수도사업보다 선행되었다.

 


1904년 06월, 경성에 공중변소가 설치되어 노상방뇨가 금지되었다.

1905년 06월, 덕수궁 내 전용수도가 설치되었다. 하야가와-황실간 계약을 맺었으며, 특허권 문제가 대두되었다. 

권동수가 일본기자재를 사용하여 시공하였다. 상수도가술 후 덕수궁 출입 물장수가 사라졌다. 


(1905년 05년 29일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었다.)


1907년 뚝섬 정수장이 준공되었다.

1908년 09월 01일부터 경성 4대문 안, 용산 일대에 상수도 공급하였다. 상수도 급수량은 12,500 m3/d으로 약 16만 5천여명이 상수도 혜택을 받았다. 4대문 밖은 1960년대까지 우물, 지하수를 사용하였다. 


1907년 11월 14일에 YMCA회관이 기공식을 올렸다. 



기공식에 황태자 영친왕,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참석했다.

1908년 12월 01일에 고종 황제의 하사금과 국내외에서 모인 부금으로 중앙YMCA회관이 건립되었다. 이 건축물은 600평 규모의 3층 벽돌양옥으로, 주철제 섹셔날 보일러와 이세주(2細柱) 주철제 방열기가 설치되어 2관식 저압증기 난방을 하였다. 1925년에 체육관과 부속건물을 증축하였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우리나라 건축기계설비 역사 - 2 보러가기



참고자료

[1] 기계설비의 날 세미나 자료집, 2016,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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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7.  16 작성



  1. http://www.customs.go.kr/kcshome/main/content/ContentView.do;jsessionid=wTpvV3tWZtnlLQkc2cQs75G0Wp9y8CZ2v9VkB2zGbwG2qx74TGxm!2217839?contentId=CONTENT_ID_000001032&layoutMenuNo=1139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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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 장치의 역사


증기 엔진(steam engine)     : 1712 (Newcomen의 엔진), 1769 (Watt의 엔진)

스털링 엔진(Stirling engine)  : 1816

오토 엔진(Otto engine)       : 1876

증기 터빈(Steam turbine)     : 1884

디젤 엔진(Diesel engine)     : 1897

가스 터빈(Gas turbine)       : 1939







디젤 엔진은 1897년 2월 17일 154rpm일때 13.5 kW, 열적효율(thermal efficiency)이 34.7%, 기계효율(mechanical efficiency) 75.5%, 순 효율(net efficiency)는 26.2%으로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가스터빈은 1939년 군용기에 처음 도입되어 실험을 했고, 같은 해에 스위스 Neuchatel에 있는 발전소에서 설치되었다. 

 









참고문헌

Closed power cycle, Costante Mario Inverniz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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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3. 1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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