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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소재의 종류와 특성 - 안감, 심감



2) 안감


의복에서 안감은 겉에서 직접 보이지 않는 안쪽에 사용되므로 자칫 가볍게 취급할 수 있으나, 바느질 기술이 좋아도 겉감만으로는 충분하게 실루엣을 표현할 수 없다. 특히 한복구성에서 안감을 경시해서는 한복 특유의 조형적 특성, 미적 특성의 효과를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

이처럼 한복 안감은 옷의 착용감, 옷의 맵시에 큰 영향을 주므로 알맞은 안감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1) 안감의 종류

안감은 옷의 형태, 질감, 색채 등을 보완하는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겉감에 알맞는 것을 선택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한복에서 주로 사용되는 안감의 종류는 노방주, 사직물, 명주 등이다. 


(2) 안감의 역할

  • 겉감이 땀이나 분비물 등으로 오염되는 것과 마모로 손상되는 것을 방지한다. (안깃, 동정, 거들지 등 사용)
  • 겉감의 구겨짐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
  • 옷의 형을 유지해 준다.
  • 보온효과를 높인다. (이중효과, 누비)
  • 겉감의 투명도와 무늬의 효과를 높인다. (모시, 숙고사, 아사, 노방주 등)
  • 옷 안쪽의 외관을 정리시킨다. 
  • 겉감보다 가볍고 얇으며 표면이 매끄러운 안감은 착용할 때와 벗을 때 편하다. 


(3) 안감의 선택

  • 겉감이 두꺼울 때는 겉감보다 옅은 동색계열이나 보색 안감을 사용한다.
  • 겉감이 얇고 비치는 옷감일 때 질감이나 조직이나 같은 흰색이나 같은색의 안감을 사용한다.
  • 겉감의 문양이나 색의 조화를 위해 색상이 다른 안감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연두색 당의에 다홍색 안감, 검정색 댕기에 다홍색 안감을 사용한다.
  • 겉감이 모시, 숙고사, 아사, 노방주 일 때 겉감과 같은 안감을 사용한다.
  • 겉감이 양단을 사용할 때 숙고사, 자미사 같은 사직물 안감을 사용한다.

이와 같이 안감을 사용하거나 겹쳐입기는 한복미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단아함, 화려함, 침착함, 단순함과 색의 조화, 무아레(물결무늬 조화) 등의 효과를 더 한층 나타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 심감


심감은 겉감을 보완하는 역할로서 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형태를 유지하여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한복에서 주로 사용하는 심감의 종류는 노방주, 면아사 등이 있으며, 근래에는 부직포나 접착심감도 부분적으로 형태의 보존을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4) 계절에 알맞은 한복소재


한복을 만드는데 필요한 옷감은 계절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택한다. 


봄 가을 옷감으로는 면직물, 마직물과 자미사, 숙고사, 진주사, 갑사, 국사, 관사, 숙항라, 부사견, 호박단 등의 견직물이 적당하다. 

여름 옷감으로는 면직물과 삼베, 모시, 생모시 등의 마직물과 은조사, 생고사, 생노방, 생명주, 생항라, 갑사, 관사 등의 사직물 종류가 많이 사용된다.

겨울 옷감으로는 무명, 옥양목 등의 면직물과 주자직으로 짠 색동단, 양단, 법단, 구단, 능견, 명주, 비로드 등의 견직물, 모직물, 방한용으로 솜, 털 등이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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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한복구성, 조윤숙, 홍선옥, 경춘사

2015. 01. 1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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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소재의 종류와 특성 - 겉감


섬유는 크게 천연섬유와 화학섬유로 나뉜다. 소재가 가지는 색상, 무늬, 촉감과 같은 심미적인 요소와 기능성뿐만 아니라, 같은 천연섬유 소재라도 질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낸다. 


1) 겉감


(1) 면직물

면 섬유는 내구성이 우수하며 흡습성, 통기성이 있으며 습윤강도가 크다. 내열성이 크고 염색성이 우수하나 탄성이 적어 구김이 생기기 쉽다.


  • 무명 : 무늬가 없는 평직으로 남여 한복감, 속옷, 침구류 등 여러용도로 사용된다.
  • 광목 : 무늬 없이 평직으로 제직한 것으로 옷감의 폭이 넓으며 속옷, 버선, 홑이불 등에 쓰인다. 
  • 옥양목 : 평직으로 직조한 후 정련, 표백한 면직물로 표면이 매끄럽다. 광목보다 올이 촘촘하며 적삼, 치마허리감, 버선, 고의 등에 사용되며 염색하여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기도 한다.
  • 포플린 : 경사 밀도를 위사 밀도보다 배 이상으로 촘촘하게 직조하거나 경사에 위사보다 가는 실을 사용하여 위사 방향으로 약간의 두둑효과를 낸 평직이다. 치마허리감, 속옷류 등에 주로 사용한다. 
  • 면아사 : 면을 사용하여 리넨(Linen)의 느낌이 나도록 뻣뻣하고 얇게 직조한 것으로 주로 치마허리감으로 사용된다.


(2) 마직물

강도가 강하고 흡수성과 통기성이 풍부하며 탄성률이 적어 구김이 잘간다. 촉감이 차고 열전도성이 우수하여 습도가 높은 여름용 옷감으로 적당하다.


마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주로 아마(Linen, 리넨), 대마(Hemp), 저마(Ramie)가 주로 사용된다.


  • 삼베 : 대마섬유를 이용한 평직의 옷감으로 주로 손으로 제직되며 여름철 옷감으로서 적삼, 치마, 잠방이, 고쟁이 등에 많이 이용된다. 그 외 침구류, 수의 등에 사용된다.
  • 모시 : 저마섬유를 이용한 평직의 옷감으로 삼베보다 고급품이다. 정련, 표백하지 않은 것은 연한 갈색이며 정련, 표백을 하면 광택이 있는 흰 모시가 된다. 주로 적삼, 고의, 치마, 두루마기 등에 사용된다. 쪽, 치자, 홍화염색 등 각종 천연염료를 이용하여 차분하면서 기품있는 색으로 염색하여 사용된다. 


(3) 견직물

누에고치에서 얻은 장섬유이다. 독특하고 우아한 광택을 지니고 있으며 촉감이 부드럽고 다른 섬유에 비해 착용감이 우수하다. 다. 하지만 알칼리, 일광, 마찰에 약하며 백색은 황변하기 쉽다.


  • 명주 : 평직의 견직물로서 광택이 우수하고 촉감이 부드럽다. 겨울철 옷감으로 적당하며 한복옷감으로 가장 널리 사용된다. 정련한 명주는 부드럽고 가벼워서 고급옷감에 사용된다. 경, 위사에 생사(生絲)를 사용한 생명주와 숙사(熟絲)를 사용한 명주가 있다.
  • 생명주 생사(生絲)를 사용하여 평직으로 직조한 옷감으로 빳빳하고 흡습성이 크며 질기다. 주로 여름철의 적삼, 치마에 사용된다.
  • 생고사 : 무연(無撚, 없을 무 비틀린 연)의 생사를 사용하여 바탕은 사직, 무늬는 평직으로 직조한 견직물이다.
  • 숙고사 : 무연의 연사를 이용하여 생고사와 반대로 바탕은 평직, 무늬는 사직으로 직조한 견직물이다. 요즈음에는 견 이외에도 물세탁이 가능한 합성섬유로도 만들며 한복에 널리 이용된다.
  • 국사 : 무연의 연사를 이용하여 바탕은 평직, 무늬는 사직으로 직조한 것으로 숙고사와 같으나 무늬가 좀 더 많고 다양한 편이다. 요즈음에는 견 이외에 합성섬유로도 만들며 한복에 널리 이용된다.
  • 갑사 : 생사를 사직으로 직조한 견직물이다. 무늬 없이 짠 것은 무문갑사, 무늬가 있는 것은 문갑사라고도 부른다. 예복, 치마, 저고리, 바지, 조끼, 마고자, 쓰개, 댕기 등 한복에서 널리 이용한다.
  • 자미사 : 경사, 위사에 연사를 사용한 견직물이다. 바탕과 무늬가 평직이면서 무늬가 있어 숙고사와 유사해 보이는 것과 무늬가 없는 평직이 있다.
  • 진주사 : 바탕은 사직이고 무늬는 평직으로 능문의 형태에 문자나 화문으로 주로 짜여졌다. 국사보다 더 투명한 사직물로 여름용 옷감으로 적당하다.
  • 옥사 : 두 개 이상의 누에가 모여서 하나의 고치에서 뽑은 실을 사용하며 실의 굵기가 고르지 않기 때문에 직물의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중간 중간에 뭉쳐있는 듯한 울퉁불퉁한 가로선이 직조되어 있다.
  • 항라 : 평직과 사직이 조합되어 가로선이 나타나는 직물로 평직부분의 위사 올 수에 따라 3,5,7,9족 항라로 나뉜다.
  • 노방주 : 생사로 직조한 평직물로 노방 또는 주아사라고도 한다. 여름용 옷감, 사철 안감용으로 주로 사용되며 요즈음에는 예복이나 파티복을 깨끼바느질하여 많이 이용된다.
  • 공단(소단) : 무늬가 없는 주자조직으로 표면이 매끄럽고 광택이 있는 견직물이다. 근래에는 견 이외에 나일론, 폴리에스터, 아세테이트 등의 인조섬유로도 많이 생산된다.
  • 양단(문단) : 주자조직으로 바탕에 무늬가 있으며 비교적 두꺼운 고급 견직물이다. 직조방법, 무늬(크기, 색상), 실의 종류에 따라 모본단, 법단, 구단, 수단 등의 다양한 단직물이 있다. 주로 여자의 치마, 저고리, 두루마기, 남자의 조끼, 마고자 등에 사용되며 이불감에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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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한복구성, 조윤숙, 홍선옥 저, 경춘사

2015. 01. 1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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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에 물통을 진 소년들이 잠시 다리쉼을 하며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인다.



1960년대 초부터 경상도 하동 인근 지리산 자락에서 마을공동체를 일궈온 청학동 사람들. 이들은 흰 한복을 입고, 총각 시절에는 댕기머리를 유지하며, 결혼 후에는 갓을 썼다. 남자들은 서당에서만 공부했기에 군대를 가지 않았다. 그들만의 신앙인 ‘유불선합일갱정유도’를 엄격히 믿으며 문명을 거부하고 자급자족해온 청학동은, 세속의 눈으로 보면 ‘신비의 마을’일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사진 찍는 걸 꺼려했던 부인들도 아들의 친구라는 생각에 선뜻 사진 모델이 되어준다.


보통교육 대신 서당에서 교육을 받았던 청학동 소년들. 종교적인 이유로 이곳에서 흡연을 금한다는 공지문이 현판 옆에 붙어있다.


1982년 당시 학생이었던 류은규 역시, 처음에는 사진학도의 호기심으로 청학동을 찾아 나섰다. 요즘이야 서울에서 5시간이면 도착하지만, 그때만 해도 20시간은 족히 걸리는 길이었다. 완행열차와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고, 종점에 내려서도 산길을 3~4km 걸어 올라가야 닿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청학동은 분명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공간이었다. 전기도 전화도 들어오지 않고, 민박 같은 곳도 없었지만 어느 집에 묵어도 돈을 받거나 하지 않았다. 



댕기머리가 귀여운 소년들. 딱히 놀이터가 없어도 산과 바위를 놀이기구 삼아 뛰어놀곤 했다.


한쪽 어깨엔 카메라 가방 메고, 다른 한 손엔 숙박비 대신 사온 쌀 다섯 말을 들고 산길을 오르며 청학동을 찾은 것이 1년에 서너 차례. 그렇게 청학동을 드나들며 사람들과 마음을 트고, 한 해 두 해 찍어온 사진이 어느덧 올해로 25년째다.

 



청학동에도 라면은 들어온다. 한때 유행했던 '해피 소고기'라면 상자가 눈에 띈다.

 

 1990년 경인미술관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에서 청학동 사진 30여 점을 전시한 적은 있지만, 청학동을 주제로 90여 점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 소개한 대형 전시로는 이번 ‘청학동 이야기’전이 처음이다.



청년이었던 사진 속 주인공의 얼굴은 어느덧 중년으로 접어들었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겠다는 마음으로 청학동에 오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들의 삶에 매료되어 마을의 동년배들과 친구가 되고, 졸업한 뒤에도 직장생활을 하며 힘들고 답답할 때 청학동을 찾았다. 그에게 청학동은 ‘친구의 고향’이자 마음의 고향이었던 셈이다.

  


결혼식날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는 풍습을 보여준다. 신랑의 당혹스런 표정과 친구들의 짖궂은 표정이 웃음을 자아낸다. 


청학동 사람들과 친구가 된 이후에는 그가 일부러 카메라를 들이밀지 않아도, 친구들이 “오늘은 사진 좀 찍지?” 하며 오히려 권하는 때도 있었다고. 사진 찍기를 꺼렸던 노인들이나 부인들도, 나중에는 ‘아들 친구’라는 생각에 마음을 열고 모델이 되어주었다. 심지어 가족의 대소사가 있을 때면 그에게 연락해 결혼식이나 장례식 사진을 찍을 수 있게끔 했다.



종교의식의 일부로 게양된 태극기를 보며 감탄하는 노인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긴 머리를 풀어헤친 소년의 모습이 지극히 편안해 보인다. 무방비 상태의 모습을 저렇듯 내보일 수 있다는 건, 사진가와 쌓은 친밀함의 정도를 보여준다.

 

그렇게 류은규의 사진 속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은 청학동 역사의 산 증거가 됐다. 청학동에 다니기 시작한 무렵인 1982년 찍은 사진에서 여덟 살짜리 꼬마였던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결혼을 해서 어느덧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된 2006년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찍은 사진들은, 그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눈 시간이 아니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이다. 




1982년, 1990년, 1995년, 1998년, 2006년 다섯 차례에 걸쳐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찍었다.  



장례식날, 왼쪽에 '민주정의당 노태우'라고 적힌 조화가 눈길을 끈다.

 


그렇게 류은규가 소리 없이 믿음을, 세월을 쌓아가는 동안 청학동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1980년대 후반 모 야쿠르트 회사의 광고에 청학동이 등장하면서 관광객들이 밀려들기 시작했고, 청학동 역시 점차 현대화의 길을 걸었다. 구식 문물 취급을 받던 서당 교육이 인성교육, 한자교육 열풍에 휘말려 각광받는 한편, 도회지로 나가 사는 사람들도 생겼다. 심지어 롯데월드에서 사주관상을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평상시엔 편한 일상복을 입고 지내는 소녀와, 흰 한복을 입고 손님을 단정히 마주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가끔 현대화된 청학동을 보고 “순수성이 사라졌다”고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면, 류은규는 마음이 답답하다. 시대가 변하는데 청학동 사람들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불편함을 고수하며 살아야겠냐는 것이다. 청학동에 자동차, 세탁기, 냉장고조차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건, 호기심에 잠시 이곳을 찾는 외부인들의 이기심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설명했다. 무엇보다 물질문명의 변화를 정신문명의 변화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위 사진의 소년과 아래 청년은 같은 사람이다. 청학동에서 작가가 보낸 세월의 흐름을 말해준다. 

 

그가 이번 전시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다. 바로 청학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청학동이란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변하지 않는 청학동은 마을 사람들이 믿는 ‘유불선합일갱정유도’처럼 정신적인 힘 속에도 있고, 그들의 모습을 쭉 기록해온 류은규의 마음속에도 있다. 류은규는 그래서 자신의 작업이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가 한 시대를 매듭짓는 회고전이 아니라, 중간 결산 과정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다.



이 사진 역시 동일 인물을  세월이 흐른 후에 찍은 것이다.

 

중국 남경시각예술학원 학장이기도 한 류은규는 요즘 1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중국에 머물고 있다. 중국에서는 청학동 사진 외에도, 항일운동가 후손을 비롯한 조선족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오고 있는지 기록하고 관련 자료를 모으며 연작발표회를 하고 있다. 




[각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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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노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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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에 관한 작가노트


청학동은 지리산 깊숙이 해발 850미터쯤에 위치한 마을이다
청학동이라는 지명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지금부터 1000여 년 전인 신라시대이며
그 후에 여러 문헌에서 청학동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신선이 푸른 학을 타고 다니는 지상의 낙원세속의 어떤 혼란과도 무관하며
이곳에서 살면 무병장수하고 죽어서는 신선이 된다는 전설의 마을이다
그러나 청학동이 어디인지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지 않아 
지금의 청학동이 전설에 등장하는 그곳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 마을은 일제시기 나무를 벌초하는 목재공출기지로서 사람들이 모여 살다가
6.25
때 빨치산이 산다는 이유로 공비숙청을 당해 마을이 소멸되었다
그 후 1960년대 초옛날 전통을 지키고 세속의 문명을 거부하는 유불선합일갱정유도’ 신도들이 
세상 사람의 눈을 피해 이곳에서 살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이 사람들이 지금의 청학동 주민들이다.


그러다가 이곳에 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자 
1970년대 마을 주민들이 이 지역을 관할하는 경상도 하동군청에 마을 이름을 청학동이라고 제출하면서 
청학동이라는 지명은 정식으로 이 마을의 것이 되었다.


내가 청학동을 찍기 시작한지 올해로 30년째다
그러나 나는 기록사진을 찍겠다는 마음으로 그 동안 청학동을 찍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끌리는 것이 거기에 있기에 나는 청학동을 끊임없이 다녔던 것이고
그때그때 내 마음에 끌리는 것만 촬영을 했다여기에 정리한 작품은 나의 종착점이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움직일 수 있는 한 나는 앞으로도 청학동을 찍을 생각이다.


세상에는 지금 청학동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다
신선들이 사는 도인촌 이라고 듣고 찾아왔는데 
으리으리한 기와집에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청학동인을 보고 실망했다 등
다른 농촌과 다름이 없다, 등등.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일시적인 향수로 이곳에 와서 
청학동 사람한테만 불편한 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난 30~40년을 뒤돌아봐서 우리 주변에 변하지 않았던 것이 도대체 얼마나 있을까
공동화장실연탄보일러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부뚜막에 불을 피우며 큰 솥으로 짓는 밥……
서울에서 태어난 나만 해도 그 동안 생활해오면서 얼마나 큰 변화를 겪어 왔는지 모른다
우리 주변 환경 중 변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변하고자 하는 것들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변해가는 것은 변하지 않고 있는 것 보다 훨씬 쉽다
그러나 청학동에는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생활양식은 변해도 그들에게는 변하지 않는 신념 즉 꿈이 있기에 청학동이 존재한다.


변하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다청학동을 찍는 나의 시선이다
그 동안 나의 생활도 많이 변했다그러나 내가 청학동 사람들에게로 렌즈를 돌릴 때의 마음은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여덟 살짜리 코 흘리게 꼬마가 지금은 아이가 셋이 있는 서른다섯 살의 중년이 되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같이 늙어 간다.


젊을 때는 내 스스로 전혀 인식을 못한 부분인데 
시간의 무게가 쌓이면 쌓일수록 내가 찍은 청학동 사진이 빛을 발휘하는 느낌을 받는다
나에게 사진이라는 매체가 있기에 이런 기록이 남았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보는 분들도 같이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진가 류 은 규 



활짝 웃음짓는 청학동 노인의 사진을 배경으로  선 류은규 작가.[각주:2]











  1. http://goo.gl/Krr1DA [본문으로]
  2. http://goo.gl/fwvCC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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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문양 이미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문화포털(www.culture.go.kr) ‘전통 디자인’ 코너에서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2012년부터 서비스가 본격화했으며 해마다 신규 자료가 추가되고 있다. 문화재 원형에서 그대로 추출한 원시자료의 개별 문양에서부터 끊어진 선을 다시 이어 복원하는 등 재가공한 활용 문양까지 다양하다. 


도깨비 무늬 수막새, 청자상감 물고기문, 꽃 모양의 수덕사 법고각 주련, 제주 대정향교 단청 등 문화재에 박혀 있던 전통 문양들이 디자인 개방으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다. 후미진 유적지나 사찰, 고궁, 고문서, 도록 등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6만여건의 전통 문양 이미지를 사용 가능하다.


전통 디자인 서비스는 누구나 활용 가능하다. 문화포털에 가입해 로그인하면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공공저작물에 대한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간단한 인터넷 신청 과정만 거치면 상업적으로도 쓸 수 있다.




[각주:1]



데이터 구축과 운영을 맡고 있는 한국문화정보센터 이춘우 부장은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는 대학생이나 전문 디자이너가 없는 영세사업자, 해외용 제품을 개발하려는 수출기업까지 이용자가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2022026515&code=9601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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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조선



결혼식

이제 갓 17세가 넘어보이는 신랑 신부는

어설프게 처음 같이 나란히 서본다


신부측 사람들은 조신하게 시선을 내리고 있는 반면

우측에 장모로 보이는 여인은 신부를 뚫어지게 살펴본다


어느 누구도 가벼이 웃지 않는다


대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서로 그것을 알기에

누구도 눈을 마추며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출처 - https://www.pinterest.com/nduong08/korea-20th-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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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 photos were taken in Korea in the late 19th - early 20th centuries

20세기의 조선





























출처 - http://www.vintag.es/2013/03/old-photographs-of-life-in-korea-mor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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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는 순서 버선 ⇨ 바지 ⇨ 저고리 ⇨ 조끼 ⇨ 마고자 ⇨ 두루마기







고름 매는 법
1. 왼손으로 긴 고름을, 오른손으로 짧은 고름을 아래서 받치듯 들고 짧은 고름이 위에 있도록 교차시킨다.
2. 짧은 고름을 긴 고름 아래쪽으로 감아 올리고, 왼손에 다시 감아 둥근 원을 만든다.
3. 긴 고름을 적당한 길이로 접는데, 이를 ‘고’라고 부른다. 고를 잡아 원 속으로 넣는다.
4. 왼손은 고를 잡고 오른손은 늘어진 고름 두 가닥을 함께 잡은 뒤, 모양을 만든다.

대님 매는 법
1. 바지 안쪽 가운데 솔기를 발목 안쪽 복사뼈에 맞춰 대고, 오른손으로 잡는다. 왼손은 바짓단 안쪽으로 넣어 바짓단을 잡고, 발목을 뒤로 한 번 감아서 가운데 솔기와 함께 잡는다.
2. 왼손으로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오른손으로 남은 바짓단을 반대로 다시 감아 바깥쪽 복사뼈까지 당겨 잡는다.
3. 아래에서 2센티미터 정도 여유를 두고 대님을 두 번 감아 돌린다.
4. 발목 안쪽에서 대님 두 가닥을 모아서 단단히 매듭을 만든다. 윗부분의 바지를 살짝 내려서 마무리한다.
보관하는 법
조끼 
어깨선과 일직선이 되도록 양 옆면을 뒤쪽으로 접는다. 아랫단을 3분의 2정도 접어 올린다.

저고리 
평평하게 펼친 뒤, 아랫단을 깃이 접히지 않을 정도(약 3분의 2)까지 접어 올린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이 되도록 양쪽 소매를 안쪽으로 접는다.

바지 
밑위 선을 중심으로 양쪽 다리를 포갠다. 허리와 밑단이 만나도록 반을 접고, 다시 한 번 반을 접는다.

한복은 속곳-버선-치마-저고리의 순서로 입는다. 한복 맵시를 제대로 살리려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속곳을 입는 것이 좋다.
Point 1. 치마 입기
치마는 뒤에서 봤을 때 오른쪽 치맛자락이 위를 덮도록 입는다. 그래야 왼손으로 치맛자락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치마 매듭은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오도록 지어야 저고리 고름과 겹치지 않아 맵시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
Point 2. 고름 매기
한복 입기에서 가장 까다롭게 느껴지는 것이 고름 매기, 차례차례 정복하기.

1. 짧은 고름을 긴 고름 위로 올린 상태에서 매듭 짓는다.
2. 왼쪽의 긴 고름을 동그랗게 고(리본 모양)로 만든 후 왼손으로 잡아 모양을 유지한다.
3. 오른쪽의 짧은 고름을 역시 작은 고(리본 모양)로 잡은 후 2에서 만든 고 안으로 집어넣는다.
4. 아래 위로 잡아당기면서 모양을 만들면 완성. 매듭보다 고가 1.5배 정도 길어야 한다.










출처1 - http://www.style.co.kr/fashion/f_view.asp?menu_id=01060801&c_idx=010102020000086

출처2 - http://www.style.co.kr/fashion/f_view.asp?menu_id=01060101&c_idx=012002050000010&article_type=1&page=&sch_type=&sch_text=&sch_oper=Or&sch_sort=1&sch_view=



에디터박태일(PARK, TAE IL)
아트 디자이너ILLUSTRATION/ 김종호
출처

GQ website


에디터

이마루(LEE, MA ROO)
기타Illustration | Cho Gum Sun
출처Allure 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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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방법으로 자녀의 신체 치수를 측정하시면 정확한 사이즈의 옷을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의 치수표는 우리나라 어린이 평균 신체 치수를 적용하였으며(98년 국립표준기술원 자료 인용), 주문시에는 연령에 관계없이 측정하신 키를 기준으로 하여 해당 사이즈를 선택하십시오(자녀를 벽에 세워 학습용 자로 키만이라도 측정하여 주문시에 참조하십시오. 집에서 키를 잴 경우 정밀 측정기기로 재는 것에 비해 약간의 오차는 있겠지만 사이즈 선택하는데는 별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팔길이, 바지, 치마길이는 저희측의 참조치수입니다-이것까지 재실 필요는 없습니다. 키만 정확히 측정하시면 부정확한 사이즈 선택으로 인해 교환을 해야 하는 등의 불편을 덜 수 있습니다. 특히 유치원, 학교, 병원 등에서 측정했던 키를 참조하지 마시고 부모님께서 자녀의 현재 키를 직접 재 주십시오.

아래의 치수표에 있는 치수는 입었을 때 딱 맞는(위의 사진 모델처럼) 치수의 사이즈입니다. 따라서 일년 정도 더 입히시길 원하시면 한 사이즈를, 이년 정도 더 입히시려면 두 사이즈를 올려 주문하십시오(그러나 두 사이즈를 올리시면 지금 입기에는 좀 클겁니다). 참조로 사이즈가 한 치수 커지더라도 옷이 상당히 커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의 치수표에서 보듯이 소매길이는 2~3cm, 치마나 바지는 4~5cm 정도 커집니다. 선물용으로 주문을 하시는 분께선 선물 받으시는 자녀의 정확한 신체치수로 주문하여 주십시오.


♣ 예를 들어 키가 120cm이고 정상 체중인 여아의 경우 ♣ (기준 사이즈는로는 8세입니다) 

☞ 지금 딱 맞게 입히시려면 --->8세로

☞ 일년정도 더 입히시려면 ---->9세

☞ 옷이 아까워서 한 2년 정도 더 입히시려면 --->10세를(그러나 이 경우에는 입기에는 좀 큽니다).


참조로 비만형이면 정상치수에서 두 치수를 올린 사이즈에서 부터 위의 계산법을 적용하십시오.

돌복의 경우에는 특별히 비만아가 아니면 그냥 주문하십시오. 넉넉하게 잘 맞습니다.



여자어린이 돌복

여자 아이에게는 연두색이나 노랑색의 천으로 저고리를 해주고 

돌이나 명절같은 특별한 날에는 색동 저고리를 입혀 아이를 곱게 꾸몄다. 

이때 저고리의 깃과 고름은 자주로 달았다.


요즈음 돌을 맞은 여자아이에게 당의를 입히는 풍습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머리에는 검정공단으로 지어 오색술을 단 조바위를 씌우기도 하는데, 아이에게 씌울 때는 수를 놓거나 

금박을 입혀 화려하게 꾸미기도 한다. 

조바위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굴레를 씌웠다.


     

남자어린이 돌복




남자 아이가 입는 옷은 여자아이들의 옷에 비해 가짓수가 더 많다.


돌이나 명절에는 아이에게 연한색으로 옷을 해 입혔는데 보통 긴 남색 고름을 단 연분홍 저고리에 대님을 붙박은 연보라색 풍차 바지를 입고, 그위에 남색조끼와 초록색 마고자를 입혔다. 

그 겉에는 자주색으로 무를 달고, 남색으로 깃, 고름을 단 오방장 두루마기를 입혔다.


머리에는 쌍희자 무늬 와 길한 문자 무늬로 금박을 입힌 복건 또는 호건을 썼다.


출처-한복닷컴(http://www.hanb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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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손질



외출에서 돌아오면 먼지나 흙 등을 솔로 깨끗이 털어 내고, 잘 털어지지 않는 것은 말려서 비벼 봅니다. 그래도 털어지지 않는 것은 깨끗한 물수건으로 살짝 닦아 줍니다. 얼룩진 부분만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묻은 즉시 그 섬유에 적당한 세제나 약품을 사용하여 얼룩빼기를 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박은 솔기가 터지거나 파손된 부분이 있으면 곧 수선하여 손쉽게 입을 수 있도록 하고, 구겨진 부분을 다려서 모양을 바로잡아 둬야 되죠. 



한복 세탁하기

비단옷은 반드시 드라이크리닝을 하여 우아한 광택을 살려주고, 모시옷은 물빨래를 한 후 풀을 먹여 다듬어 주며, 합성섬유 직물의 옷은 물 빨래를 하여 그늘에서 그대로 널어 말린다. 물빨래를 할 때에는 옷감에 따라 적당한 세제를 택하여야 하며, 먼저 물만으로 애벌빨래를 가볍게 한다음 약 10분 동안 세제를 푼 물에 담가 두었다가 가볍게 비뼈 빤다. 때가 덜 빠졌을 때에는 깨끗한 물에 다시 세제를 풀어 빨아야 하며, 헹굴 때에는 약간 미지근한 물로 헹구는 것이 찬 물에 헹구는 것 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한복 보관하기

계절이 바뀌어 오랫동안 보관할 때는 저고리는 동정을 뜯고 치마는 허리를 뜯어 주름을 펴서 두어야 하며, 모시 옷은 풀을 먹인 상태로 두면 좀이 슬기 쉬우므로 풀기를 완전히 빼고 다려서 둔다. 그리고 많은 옷을 눌러 넣어두면 옷의 모양이 변하기 쉬우니 눌리지 않게 적당히 넣어야 한다. 옷을 보관하는 용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옷장만도 용도에 따라 이층장, 삼층장, 반닫이, 양복장 등오로 그 형태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오동나무로 만든 옷장은 가볍고 뒤틀리지 않으며 , 습기가 많을 때에는 자연히 팽창되어 외기의 침입을 막고 또 내부의 습기를 흡수하기 때문에 장 속의 옷은 항상 건조 상태를 유지 할 수 있어서 옷장으로는 가장 이상적이다. 옷을 장기간 보관 할 때는 비닐이나 폴리폴리에틸렌 주머니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 데 통기성이 없어 밀폐할 수 있으나 충분히 건조시키지 못한 옷을 넣으면 오히려 좋지 않다. 옷을 보관 할 때는 충해를 막기 위해 방충제를 반드시 종이에 싸서 옷갈피에 넣어두도록 하고 , 습기를 방지하는 방습제도 함께 넣어 두면 좋다. 그리고 맑은 날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자주 거풍하는 것도 충해를 방지하는 방법 중의 하나다. 거풍된 옷은 솔로 털고 다시 잘 개켜서 보관한다.



한복 개키기


될 수 있는대로 많은 선이 가지 않도록 크게 개켜 두는 것이 좋다.


1. 저고리

저고리는 잘 펼쳐서 고름을 가지런하게 옆으로 뼻?놓고 양쪽 소매를 길 쪽으로 진동선을 꺾어 접어 개킨다. 남자 저고리의 경우에는 다음에 길의 아랫부분을 어깨선까지 접어 올려 놓는다. 그러나 자주 입는 경우에는 등솔을 중심으로 하여 반을 접어 진동선이 닿게 옷걸이나 횃대에 걸어 둔다.


2. 치마 

치마는 폭과 폭선을 합하여 반씩 접은 후 길이로 반을 접어 개킨다. 자주 입는 경우에는 허리를 끈으로 돌려 묶어 옷장 속에 걸어두기도 한다.


3. 바지 

바지는 밑위 중심선을 중심으로 하여 반으로 접어 양 가랑이를 포개어 놓고 밑 아래와 밑 위 부분을 각각 반으로 접어 개킨다. 대님과 허리띠는 바지 갈피나 조끼 주머니에 넣어 둔다.


4. 조끼 

조끼는 뒷 중심선을 중심으로 하여 반으로 접어 앞뒷길 4겹이 되게 개킨다.


5. 두루마기 

두루마기는 잘 펼쳐서 고름을 가지런하게 옆으로 접어 놓고 양 쪽 소매를 길 쪽으로 진동선을 꺾어 접은 후 위에서부터 길이의 1/3 선을 양 손으로 쥐고 병풍 접기로 세 번 접어 개킨다. 보관 장소가 협소할 때에는 양쪽 무를 길 위로 접어 개켜도 좋다.



한복 다리기


다림질을 할 때에는 덧 헝겊을 덮고 옷감에 따라 적당한 온도로 다려야 옷감이 상하지 않고 모양의 변화도 적다.

1. 저고리

저고리는 먼저 안감을 다리고, 도련과 부리의 안감이 겉으로 밀려 나오지 않도록 안 쪽에서 눌러 다린 다음 겉감을 다린다. 겉감은 뒷길과 소매 뒤, 앞길과 소매 앞, 안깃, 겉깃, 고름의 순으로 다리며, 특히 앞길을 다릴 때에는 섶코에 실을 꿰어 잡아 당기면서 다려야 섶코가 예쁘게 빠진다.


2. 치마

치마는 아랫단과 선단을 안감 쪽에서 먼저 다리고 치마 폭을 아래에서부터 다린 후 허리를 다린다. 이 때에 주름은 너무 누르지 말고 다려야 치마의 풍성함을 살릴 수 있다.


3. 바지

바지는 먼저 허리와 부리의 안감이 겉으로 밀려 나오지 않도록 안쪽에서 눌러 다리고, 마루폭 솔기를 약간 잡아 당기면서 다린 다음 마루폭 솔기를 접어 놓고 사폭과 허리를 다리며, 나중에 대님과 허리띠를 다린다.


4. 기타

조끼는 안감을 먼저 다린 후 겉감을 다리며, 마고자와 두루마기는 저고리와 같은 방법으로 다린다.



출처-한복닷컴(http://www.hanb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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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삼국시대에 복식은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서 볼 수있는데 머리에는 관모를 으며 저고리가 엉덩이까지 내려오고 직선으로 교차시켜 여미는 깃형태의 직령교임식으로 외쪽여밈이다. 또 깃 부리 도련에는 다른 천으로 선을 두르고 바지는 가랑이가 좁은 홀태바지 형이다. 그리고 양복바지와 같은 궁고 가랑이가 넓은 광고 잠방이와 같은 바지도 있었다. 치마는 길이가 길고 거단까지 잔주름이 잡혀 있다. 두루마기는 무릎을 내려갈 정도로 길고 저고리와 같이 선도 보인다. 신은 주로 화를 신고 이도 병용하여 신었다.


[고구려]

고구려는 BC 37년에 건국되었다. 원래 고구려는 동북 아시아적인 문화 위에 웃 북부 중국의 한(漢) 육조문화 그리고 북부 중국을 거쳐서 스며드는 고대 서북방 민족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만주에 진출했던 흉노족을 비롯한 변방의 여러 부족을 통한 스키타이문화 등 북방계 문물과도 접촉했다. 고구려의 복식은 평양 부근과 통구평야 지대이다. 먼저 머리에는 남녀 모두 관모를 썼는데, 남자들은 건, 책, 절풍, 입, 변등을 썼고 여자들은 건귁을 썼다. 북방계 유목민있어던 우리 민족은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추위를 피하거나 햇빛을 가리기 위해 '관모'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기록으로는 '삼국지'의 '부여전'에 금과 은으로 장식한 모자를 썼다고 처음 나온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는 책이나 절풍을 비롯한 많은 관모가 나타난다. 또'삼국지'난 '후한서'등에는 '고구려에서 는 대가와 주부는 책을, 소가는 절풍을 썼는데, 그 형태는 고깔 모양이었다'라고 씌여 있다. 



이것으로 보아 고구려의 관모는 실용적인 목적외에도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었다. '당서'나 '구당서'의 '동이전'에는 "부인은 머리에 건귁을 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은 고구려의 여인들은 건귁이라는 머릿수건을 즐겨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건귁은 계속 이어져 내려와 근세 이후 개성 이북의 여인들이 많이 쓰던 머릿수건이 이것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고구려의 두루마기의 기본형은 곧은 깃에 왼쪽여밈, 좁은 소매였다. 이 두루마기는 저고리인 유가 길어진 것으로, 하층계급의 사람들이 입었다.상류층에서는 둥근 깃에 오른쪽 여밈, 넓은 소매로 된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중국 한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 추위를 막기 위해 입던 두루마기는 점차 의례적인 차림으로 바뀌어 갔다. 저고리는 곧은 깃에 좁은 소매, 왼쪽 여밈으로 되어있고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이가 길었다. 바지는 통이 좁았는데 신분이 높은 사람은 중국식의 통 넓은 바지를 입기도 하였다. 여자들은 짧은 치맛속에 바지를 덧입었다. 치마는 무용총 접견도에 보이는 승복용 치마를 제외하면 모두 여자의 옷이었다. 일반적으로 길이가 길고 허리에서 치맛단에 이르기까지 잔주름이 있으며, 저고리와 마찬가지로 치마 끝에 선을 둘렀다.


  


[백제]

백제는 고구려와 같이 부여족의 한 갈래이다. 시조왕(始祖王)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백제라 하였다. 그 후 마한의 여러 부족국가를 멸망시키고 북으로 대방군을 공격하여 국세를 확장시켰다. 그러는 동안 고구려를 통해 북조문화의 영향을 받고 중국 남조문화를 들여와 찬란한 백제문화를 형성하였다. 백제의 초반(AD6C)엔 뛰어난 금속공예술을 보였다. 이시대에 많은 장신구들이 출토되었다. 백제의 복식 모양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고 본다. 곧 허리까지 오는 저고리에 바지(또는 치마)를 입었고 필요에 따라 포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양의 직공도에 보이는 백제국사의 옷 모양이, 고구려 백화의 인물상의 옷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한층 확실시되고 있다. 다만 백제국사의 옷 모양에서 특이한 사실은 바지 끝단에 선이 둘러져 있었고 양복바지와 같이 대님을 매지 않고 그대로 입었다는 점이다. 

물론 고구려 백화의 인물상에서도 바지 밑단에 가선을 두르거나 부리를 동여매지 않고 입은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예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만큼 고구려와 백제의 의복 차이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신라]

신라의 복식을 보면, 먼저 관모로는 일반인의 경우 가죽으로 만든 삼각형의 변형모를 많이 썼다. 또한 상류층에서는 금, 은, 옥 등으로 만든 금속제 관모를 예복용으로 썼다. 신라의 의복에서 남자는 허리까지 이르는 저고리에 통이 넓은 바지를 입었는데, 바짓부리는 묶여져 있었다 또한 여자는 허리 아래에 이르는 저고리에 발목까지 오는 긴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러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기본적인 옷차림이 고구려인과 같았다는 것을 뜻한다. 기본 복식 위에 입었던 포도 그 형태가 고구려나 백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신라의 신 또한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이와 화가 함께 착용되었는데, 이는 주로 여자들이 많이 신었고 화는 남자들이 많이 신었다. 신의 재료도 천,금속제,흙,풀 등의 다양한 재료가 이용되고 있어 삼국 중에서는 가장 화려한 신발 문화를 이룩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화는 크게 발달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화가 남녀 모두에게 착용된 고구려와는 달리 신라에서는 남자들만 착용하였으므로 미에 관심이 많은 여자용의 이처럼 다양한 발달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신라의 복식 생활에서 또 하나 특기할 사실은 의료 수공업의 발달이었다. 이는 일찍이 신라에 가배라는 방적기술 연마 풍속이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의료 중에서도 특히 많이 생산된 것은 마포였고, 가는 견사를 날실로 하고 굵은 견사를 씨실로 해서 짠 비단의 일종인 모초도 생산되었다 

  


[신라시대]

신라의 복식은 관모에는 복두 상의로는 표의 , 반비, 단의 ,내의 배당이 잇었다. 띠에는 보통의 띠와 용대가 있었고 하의로는 고와 상, 발에는 버선,이 화대가 달린 화를 신었으며 표라는 목수건이 있었다. 통일신라는 문화의 전성기로 복식도 발달. 흥덕왕9년에는 계급적 복식질서를 쥬지하기 위해 복식금제명령이 내려짐.우리고유의 관모인 소골,절풍 대신 진골에서 평민에 이르기 까지 일률적으로 복주를 썼는데 이것은 당나라의 절상건에서 나온것으로 여겨지며 단석산 공양인물도에서 복두의 모습을 볼 수 있다.표의,바지,저고리 :웃옷으로 표의라는 두루마기가 잇는데 남자의 겨우는 포란이라 하였다. 이포란의 형태는 문관은 옆이 막혀있고 무관은 아래가 한자 정도 틔어 잇어 직책에 잘 어울렸다. 표의는 상하구별없이 통요되었으며 평인은 마포나 갈포를 사용하고 4두품이상은 면주로 하였다.저고리는 흥덕왕 복식 금제에 단의라 기록하고 있는데 그뜻은 요즘의 저고리 처럼 길이가 짧아서 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또 내의 는 포를 입엇을때 저고리`를 말하는것과 같다.치마, 반비 배당 : 신라에서 당나라의 복식을 모방하여 상을 입었으나 여자의 치마인 군과는 다른 형태이며 의례용이었던것같다 복식 금제에서는 내상과 표상의 구별이 보이는데 내상은 속치마로 추측된다.반비는 남녀공용으로 소매가 짧으며 전복이나 답호와 같다. <지봉유설>에 보면 배자와 같다고 한다. 배당에도 배자와 같으며 소매가 없다 복식금제에서 보면 6두품에서 4두품까지 여자에게 허용하였던 옷이다.


관모: 남자의 두발을 보면 소년은 매는 형이고 성인은 상투를 틀었으며 머리에 스는 대표적인것은 복두였다 



[고려시대]


왕복: 상복,공복,조복,연복,에복이 있다. 상복은 고려도경에 의하면 오사고모를스고 금벽을 수놓은 담황색의소매가 좁은 포를 입었으며 자색 늑건을 띠었다고 기록되어잇다. 여기에 오사고모는 중국천자의 조사절상건은 복두에서 일어난것으로 조선시대의 익선과이 되었다고 한다.공복으로는 자라공복을 입고 상아홀과 옥대를 갖춘다 조복은 평상복위에 복두를 쓰고 속대를 띠며 연복은 조건에 백저포를 입어 서민과 다를 바 없이 우리 고유 복식을 입었다고 한다. 제복으로는 구류면,구장복은 면복인데 이것은 나라의 제향 ,가례등 특수의식에 입는 법복으로 면류관과 거기에 따르는 복식의 총칭이다. 의복만을 할때 십이면류 십이장문을 수놓은 십이장복이다. 제복의 구성을 보면 면류관,면복,상,백사중단,폐슬,수,혁대,옥패,대대,흰버선,붉은신이다. 그런데 제례인 경우에는 방심곡령을 한다. 또 고려말 공민왕 19년 5월에 명의 복제의 영향으로 자주성을 모색해 보고자 중국황제와 동격의 십이류면,십이지장복을 입었으며, 조복에도 중국천자와 같은색의 원유관에 강사포,홍상 백사 중단 강사폐슬 백가대 방심곡령 홍햐대흰버선,검은신을 제정하고 있다. 고종18년 몽고의 침입을 받아 그영향 권에 들어섬..




민서복: 몽고풍에 비해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가 좁아 졌으며 고름을 매게 되었다. 진사는 사대문락건에 조주구를 입고 흑대를 혁리를 신었다. 농민이나 상인은 백저포에 조선, 민장은 조주구에 문라건,흑각대,오혁리였다. 뱃사람은 바지저고리를 입지 아ㅎ고 죽관에 단갈만 입었다고 하는데, 그형태는 잘 안수 없느나 현재의 승복인 동방과 비슷한것으로 짐작된다.불자는 일반사람들이 좋아하는 청적황배흑의 5가지 색을 제외한 잡색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국사는 납기사에 장수편삼과 자상을 입고 오혁대를 띠면 행전과 같은 금발을 치고 방울 달린 영리를 신었다. 두루마기는 유학자들은 조주구위라는 중국식두루마기를 입엇다. 농공상기인들은 두루마기형의 백저포를입고 속대를 띠었다.


 


[조선시대]


조선중기후기의 임진,병자 양란 후에 실학 사상으로 말미암아 복식에도 실용성을 부여하게 되고 단순화 시키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고종 21년 갑신정변과 더불어 복제 변경을 단행하였다 개화기에 이르러 우리나라 복식은 고유복식과 양복의 소용돌이 속에서 끈질기게 그전통을 발전시켜 왔다.



 



왕복 : 제복으로 면복,조복에는 원유관,강사포,상복에는 익선관,곤료오,첩리,답호가 있으며 전쟁시에 전립으에 융복을 입고 한가히 지낼대는 편복을 입었다.


면복: 왕의 제복및 대례복으로 면류관에 곤복으로 구성된다 면류관은 위모관과 더불어 중국 고유의 관모로 주나라에서 유래된것이다. 면류는 황제가 12류 12옥이고 황태자,친왕은 9류 9옥이며 옥의 색채도 5채옥과 3채옥등을 엮었다.


익선관.곤룡포: 익선관에는 왕의 상복으로 평상 집무때입는 옷이다. 세종 26년 3월 에 사은사 유수강이 명나라에서 가져온 왕의 상복을 보면 익선관,곤룡포로 기록되어 있다. 익선과은 복두를 모방하여 만든 관모로 탕건위에 썼다.그리고 명사 <여복지>에 기록된 곤룔포를 보면 황제는 황색포에 앞뒤와 양어깨에 용문을 직금하엿고 황태자는 색만 다른 홍색포역다. 따라서 조선에서는 친왕례에 따라 세종조에서 조선 말가지 홍색의 곤룡포를 입었으나 고종의 황제가 된후에는 황색포를 입었다.


사인복 : 사인복은 유관자 아닌 반인 계급의 복식을 말한다.,


남삼,심의 : 남삼은 단령에 선을 두른 형태로 상사의 복식으로 삼앗는데 이것은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입는 옷이다. 아울러 생원,진사,창방이 입었으며 앵삼과 같은 것으로 옥색길에 검은선을 둘렀다. 심의는 고대 중국 의 천자 ,제후의 평복이었고 사대부에게는 상복,서인에게는 길복이었으며 유자의 법복이었다 그형태는 백포로 만들어 의 4폭,상 12폭을 서로 연하여 둥근 소매,모난깃,굽은 단을 가졌으며 깃,도련,부리에 검은선을 두르고 복건을 썼다. 굽은 단을 가졌으며 깃,도련,부리에 검은 선을 두르고 복건을 썼다. 여기서는 치마폭의 12폭인 것은 1년 12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심의의 재료는 세포(세마포),명주를 썼으나 툭수층은 비단을 사용하였다. 이옷에 매는 띠오 흰색에 검은 선을 2줄 둘렀으며 매는 방법은 동심결로 맨다.


여자복식 



조선시대의 여자 의복에는 저고리 치마 속옷 비롯하여 버선신까지 포함한 평상복과 의식이나 혼레때 입던 적의 활옷,원삼, 당의 등 예복이 있다.


저고리: 조선초기 1530년대의 순천 김시의 갈색명주 솜저고리 는 길이가 70cm이며 1580년 청주 한시의 덧저고리 길이가 70cm이며 1580년 청주 한씨의 덧저고리 길이는 81cm나 되었는데 1616년 판것이고 1700년대의 누비 삼회장 저고리는 길이가 42cm 점점 짧아지고 깃도 당코깃으로 변하엿다 1780년 청연군주의 문단 삼회장저고리는 길이가 19.5쎈티이며 조선만 1900년대의 저고리길이가 극도로 짧아진 때는 14.5센티로 거의 진동선 과 일치하게 되고 진동의 길이는 13센티이며 곁마기는 진동선위로 올라가는데 앞도련이 가장 짧아진 부분의 길이는 12센티밖에 안된때도 잇었다.1930년대의 반회장저고리는 길이가 26센티인데 이때부터 현재의 저고리길이와 비슷한 25~26센티 정도의 기이로 정착된 것을 볼수 있다 이들 저고리의 길이가 아주 짧아지는 변천은 임진란 전 조선 초기의 저고리들과 비교하면 그특징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복식흐름의 성향은 전란 후라는 사회적 요인에 의하여 단순화된것이며 형태는 축소되고 계급적으로 평등화되엇으며 제도적으로 자유화되는 혀낭으로 해석할수 있다,


배자 : 장배자,단배자,배자의 세종류가 있다 장배자는 양옆을 꿰매지 않은 요즈음원삼이고 다배자는 뒤의 다으이를 말하며 반비의 짧은 것이 요즈음 볼수 잇는 배자이다.


갓저고리: 초구라고도하며 중국 혁철족의 복식에 서 그 원류를 볼수 잇다. 갓저고리와 갓두루마기는 상류층에서 입은거 같고 세종11년 2월 사헌부에서는 초구피를 양반자제에게 허용 하였다.


치마 :우리나라 여자옷의 기본인 치마 저고리 의 형태가 다 같이 단일적이면서 저고리에는 다소 변화를 갖는데 비해 치마에는 별로 변천이 없었고 그길이는 저고리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주기로 유행하였다 속치마는 겹겹이 5~6겹입었는데 처음은 짧게 하고 차례로 길게 하여 겉치마를 입은 모습은 비약한 가슴에 비해 둔부는 종을 엎어 놓은 듯하였고 그 위로 긴 치마가 끌릴 때의 미는 생명력을 갖고 유행하엿던 것을 알 수있다,치마입는법은 반가부인은 외로 여미고 서민 계급은 바로 여며 반상을 가렸다. 색에 있어서는 양반 계급은 어려서부터 출가하여 아기를 낳을 때가지 다홍치마를 주로 입고 중년이 되면 남색치마 노년이 되면 옥색회색 계통의 치마를 입었으나 부부가 함께 살아 있으면 아무리 늙었어도 큰일 때에는 남색치마를 입었다. 노비들은 5세가량까지는 별차이 없이 다홍치마를 중년이후에는 감색이나 고동색을 많이 입었다. 옷감에 있어서 양반은 주로 단 사 주 를 입었으며 고동색을 많이 입었다.


두루마기 :두루마기는 갑오경장이후의 표를 말하며 삼국시대에는 포로 불리었는데 그 모습을 고구려 벽화에서 볼수 있고 신라의 표의 백제 국사의 포가 그것이며 고려 조선시대까지도 남녀 비슷한 형태엿다. 두루마기 원류는 구에서 발전한것으로 보이며 그 복식용어는 조선후기로 보는데 몽고의 xurumakci에서 나왔다고 한다.조선시대의 여자 의복에는 저고리 치마 속옷 비롯하여 버선신까지 포함한 평상복과 의식이나 혼레때 입던 적의 활옷,원삼, 당의 등 예복이 있다.



출처-한복닷컴(http://www.hanb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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