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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C/UW


 

UMC는 지난 번 앨범을 내면서 예명을 UW(유위柳僞)’로 바꾸었다. 문학의 본질은 거짓이라는 생각 때문에 거짓 위 자를 썼다고 한다. 

“가사도 일종의 문학이고, 가수는 작가입니다. 전 음악은 랩이지만 가사 쓰는 마인드는 정태춘, 김광석, 김현식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1집의 ‘가난한 사랑노래’ 같은 경우 다들 제게 사실이냐고 물어봅니다. 그럴 때 내가 가사를 잘 썼나보다 하고 뿌듯해하죠.”

-유엠씨는 힙합의 본고장 미국과 다르게, 딱딱 맞는 라임(Rhyme, 각운脚韻)을 쓰지 않는다. 미국 힙합을 추종하는 다른 가수들로부터 공격도 많이 받았다. 한국 힙합은 전통적으로 해외 교포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 힙합의 이방인으로 불린다.


“미국은 정치색도 문화적 유행도 성에 눈뜨는 시기도 우리와 달라요. 말이 바뀌는 순간 그 문화는 이미 바뀐 겁니다. 교포 래퍼들의 사회문화적 배경은 한국이 아니라 LA오렌지카운티예요. 그들은 자기 문화에 솔직한 거고 이건 문제가 안됩니다. 난 서울특별시에서 31년을 살았어요. 그들과는 달라야 정상 아닙니까? 전 리듬감 때문에 발음을 희생하는 게 싫어요.”

  


UMC/UW

본명은  유승균, 1979년 서울 태생, 성균관대 국어국문학 전공







UMC/UW - 사람들을 착하게 만들어 놨더니


UMC/UW - Bullets


UMC/UW - 우리가 홀로 서기까지



UMC/UW - 내돈 어딨냐


UMC/UW - 직장인의 노래




은평 인터넷 방송국 EBN 은평난장에서 강연

소비자 입장에서 시작했던 일이라서, 고객의 불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망치로 때려 박듯 일방적인 방송이 아니라, 대화를 하는 것이 방송이라고 생각했다. 


듣는 사람을 겁내하면서 준비하는 일이었다. 

상대방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말은 진실이 아니다. 말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화가 난다고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나있다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더 재미있다. 


관찰만 제대로 하면, 설득을 시킬 수 있다.

미리 겁을 내고 관찰을 하라. 쉬지 않고 눈치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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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4. 04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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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자립단체


에너지 자립을 위해 힘쓰는 단체들을 정리해본다.



위키

http://goo.gl/F1zlNn



"에너지자립단체" 분류에 속하는 문서

다음은 이 분류에 속하는 문서 12개 가운데 12개입니다.



MAP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ze7cNNjFHEms.kjPEFjpDlMFw




[각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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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2 작성



  1. 이원욱 의원, 전국 시민참여형 햇빛발전의 현황과 과제 토론회 자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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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ar schools in UK 


[각주:1]



영국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 흥겨워 보인다. 


학교 옥상에 청정에너지(대부분 태양광패널)를 설치하는 프로젝트이다. 

이름하여, 태양학교(Solar School) 프로젝트!


청정에너지를 사용하면, 학생도 좋고 학부모도 좋고 지역사회도 좋고 다 좋단다~ㅎ

Yeah~~ㅎ


[각주:2]




[각주:3]


[각주:4]


영국 전역에 걸쳐 진행하고 있는 Solar School. 

각 학교마다 모금액 진행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각 학교마다 페이지를 하나씩 제공하고 있다.


초록색은 모금이 진행이 완료된 학교이고

핑크색은 아직 모금이 진행되고 있는 학교이다. 



[각주:5]


칸이 나눠져 있고 한 칸씩 기부할 수 있다. 한 칸당 5 파운드씩인데 원하는 만큼 클릭하면 색이 칠해진다. 중간중간에 기부자에게 어떠한 상(prize)이나 리워드(reward)가 수여되는지 볼 수 있다.


시각적으로 기부자가 얼마나 기부하는지 볼 수 있어 효과적인 듯 하다. 




 태양학교(Solar School)은 '10:10'이라는 단체가 운영한다.


'10:10'이라는 단체도 상당히 흥미롭다.  



[각주:6]






10:10 의 소개글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It's not just something you support. It's something you do. 

We’re on the way to a cleaner, cleverer, low-carbon world, and everyone deserves a chance to help build it.


10:10 creates these chances, and brings people together to make the most of them.


10:10ers work together to:

  • Celebrate the good stuff that’s already happening, and help it spread
  • Save energy at home, at work and in our local area.
  • Light up our best-loved places with crowdfunded clean energy.
  • Convince people in power to tackle the stuff we don’t control.


의역을 하면, '당신을 지원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참여해야 존재하는 것이다' 라는 뜻


그러니깐 '같이 하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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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2 작성



  1. http://www.solarschools.org.uk/about/ [본문으로]
  2. http://www.1010global.org/uk [본문으로]
  3. http://www.solarschools.org.uk/ [본문으로]
  4. http://www.solarschools.org.uk/ [본문으로]
  5. http://www.solarschools.org.uk/ [본문으로]
  6. http://www.1010global.org/uk/about/backstory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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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쓸데없음의 가치


올봄,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야간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중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관한 시간. 교수님이 처음에는 정해진 자료에 따라 강의하다가 점점 관련 연구 이야기를 신나게 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에 간 구법승이 혜초 외에도 많았는데 그들이 얼마나 살아서 돌아왔는지가 궁금해졌단다. 그래서 온갖 고문헌을 추적하여 구법승들의 생환율을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교수님을 보며 든 두 가지 생각. '아, 아름답다.' 그리고, '아, 그런데 쓸데없다.'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인문학의 아름다움은 이 무용(無用)함에 있는 것이 아닐까. 꼭 어디 써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궁금하니까 그걸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칠 수도 있는 거다. 물론 구법승 생환율을 토대로 당시의 풍토, 지리, 정세에 관한 연구를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꼭 그런 용도로 연구를 시작하신 것 같진 않았기에 든 생각이다. 실용성의 강박 없이 순수한 지적 호기심만으로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학문의 기본 아닐까. 그 결과물이 활용되는 것은 우연한 부산물일 뿐이고. 수학자들은 그 자체로는 어디에 쓸 일 없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350여년간 몰두했다. 그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많은 수학이론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인문학적 경영' 운운하며 문사철 공부하면 스티브 잡스 같이 떼돈 벌 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하는 CEO들께는 죄송하지만, 잡스는 나중에 뭘 하려고 리드 대학 가서 인문학 공부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히피, 외톨이, 괴짜들과 어울려 쓸데없이 놀다가 한 학기만에 중퇴한 후 예쁜 글씨 쓰기에 매료되어 서체학(calligraphy) 강좌를 청강했다.


대학 갈 때 써먹을 욕심에 논술학원 보내서 초등학생에게 어려운 책을 읽히고 있는 학부모들께 죄송하지만,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필자가 입시 때문에 마지못해 본 책은 한 줄도 기억 나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몰래 보던 소설책, 자율학습 땡땡이 치고 보러 간 에로 영화는 방금 본 듯 생생하다. 글쓰기를 좋아하여 책까지 내게 된 건 그 때문일 거다. 쓸데없이 노는 시간의 축적이 뒤늦게 화학작용을 일으키곤 하는 것이다.


현재 쓸모 있어 보이는 몇 가지에만 올인하는 강박증이야말로 진정 쓸데없는 짓이다.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고 미래에 무엇이 어떻게 쓸모 있을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무엇이든 그게 진짜로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을 당할 도리가 없다.


공학박사이자 사업가인 후배가 쓸 만한 프로그래머가 없다고 한탄하길래 전국에 명문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냐고 물었다. 후배 왈, 자기는 중고생 때 단지 재미로 프로그래밍 언어를 독학하여 허접한 게임을 만드느라 날을 새곤 했단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선행학습 하랴 경시대회 준비하랴 바빠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 본 경험이 없어 뭔가 새로운 걸 만드는 재주가 없단다. 또 어느 교수님에 따르면 요즘 서울대생들 보면 매사에 욕망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 같아 보인단다. 번아웃 증후군일까.


물론, 슬프게도 지금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모든 것이 언젠가 쓸모 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실용성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로또 긁는 소리다. 하지만 최소한 그 일을 하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다면 이 불확실한 삶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쓸모 있는 일을 이미 한 것 아닌가.


이번 주말에는 답 안 나오는 스펙의 복학생이 ‘족구 하는 소리’ 말고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하라는 주변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족구, 그리고 가망 없는 짝사랑에 열정을 불태우는 영화 ‘족구왕’이나 한번 더 보련다.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출처 

[1] 중앙일보, 2014. 12. 02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578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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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1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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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coop.EU


REScoop 20-20-20 is an initiative launched by the Federation of groups and cooperatives of citizens for renewable energy in Europe with the support of the Intelligent Energy Europe Program (European Commission). Twelve organisations in seven countries have joined forces to increase the number of successful citizen-led renewable energy projects across Europe.


유럽 전역에 걸쳐, 신재생에너지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는 단체들의 연합을 이끌어 내고 있다. 


[각주:1]


단체들의 위치와 정보들을 지도에 표시하였다. 각 단체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에너지원으로 하고 있는지 등으로 걸러볼 수 있다. 


What is a REScoop?


REScoop is short for Renewable Energy Sources COOPerative. A REScoop is a group of citizens that cooperate in the field of renewable energy, developing new production, selling renewable energy or providing services to new initiatives.


REScoop는 에너지원 협동을 뜻한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협력하고 새로운 것을 개발하며 신재생에너지를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Not only cooperatives (in the limited legal definition of the word) should participate in our knowledge sharing network. If you are a group of citizens in any legal form concerned with one of the above mentioned activities, your information will still be valuable


협동할 뿐만 아니라 지적네트워크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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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05 작성



  1. http://rescoop.eu/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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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나우 에너지 이니셔티브 (EWS, Elektrizitätswerke Schönau) 


쉐나우는 독일 남부 흑림지역에 있는 인구 2500명 정도의 아주 아담한 마을 이름이다. 비록 작은 마을이지만, 에너지 문제에 관심 있는 이 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곳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거대 전력회사로부터 마을 의 전력망을 매입해 자체 전력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전 유럽 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가장 많이 팔린 품목 중 하나가 방사능 측정기라 할 정도로, 대부분의 시민들은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방사능이라고 하는 두려움에 크게 시달려야 했는데, 쉐나우 지역 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몇몇 의식있는 주민들은 ‘원자력 없는 미래를 위한 부모들’이라는 모임을 만들 어 에너지 절약 운동의 전개, 체르노빌 사고 피해 어린이 초청 등 실천적인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모임은 시작단계부터 커다란 벽에 부딪치는데, 다름 아닌 쉐나우 지역의 전력 독점권을 갖고 있는 전력회사와의 갈등이었 다. 에너지 절약 운동이 전력회사 자신들의 전력 판매에 안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 전력을 많이 쓰는 사 람이 이득을 보게끔 가격을 조정한 것이다.


쉐나우 지역 주민들은 전력 독점의 문제점을 깨닫고 이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 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몇몇 가구가 결합해 소형 열병합 발전기를 설치하고, 오래된 소수력 발전기를 손봐 전력을 만들었다. 그러나 전력회사의 독점적 지위로 인해 전력회사 외에는 전력 판매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원활 한 보급은 힘든 형편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독점적인 전력회사를 몰아내지 않고서는 원자력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할 길도 없다는 것을 주민 스스로 깨닫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전력회사의 독점적 지위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쉐나우에서 벌어지고 있 는 상황을 언론을 통해 알리는가 하면, 마을 주민들을 일일이 만나면서 전력회사의 횡포에 대해 고발하기 시작했다. 결국 쉐나우 주민들은 투표를 통해 전력회사의 독점적 권한을 빼앗을 수 있었다. 이후 전국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해 EWS라는 전력회사를 만들어 전력판매를 가능케 했으며, 더 나아가 전력망까지 매입해 1997년 7월 1일 명실상부한 쉐나우만의 주민자치 전력회사가 되었다.


1998년 4월 독일의 전력시장 자유화와 발맞추어 EWS도 전국적인 재생가능에너지 판매회사로 거듭났다. EWS만의 특별한 재생가능에너지 보 급 프로그램을 실시했는데, 전력 소비자들이 사용료 이외에 자발적으로 내는 약간의 돈을 모아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시 설을 설치하고, 또 열병합 발전시설 설치자를 지원하는 활동이 그것이다. 이러한 EWS의 활약은 쉐나우에서 시작 한 주민들의 에너지 독립을 독일 전체의 재생가능에너지 보급 및 주민자치 에너지 독립으로 이어가고 있 다.



 Official year of establishment:

 1991 as GbR (a cooperative since 2009)

 Members

 2000

 Project name:

 EWS Netze

 Country:         

 Germany

 Renewable Energy Source(s)

 Solar, wind, hydro, biomass, cogeneration

 Best practice:      

 Grid connection and sale of energy

 Mentor:          

 Sebastian Sladek

출처 - http://rescoop.eu/elektrizitatswerke-schonau-ews




우르술라 슬라덱(Ursula Sladek) 


평범한 시민들에게 에너지 권력을.


[각주:1]


우르술라 슬라덱은 유럽 최대 친환경 전기 공급업체이자 시민이 운영하는 기업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독일 슈나우 전력공장(EWS)의 창립자이다. 


EWS의 목표는 에너지 공급의 민주화와 공급권의 분권화를 이루는 것이다. 즉, 원자력 화력 발전의 의존도를 내리고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공급하는 것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특별한’사람이었을까? 

그녀는 그저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생각하는 평범한 주부였다. 


“나는 그저 평범한 주부이자 부모였을 뿐입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탔지요. 게다가 그 이전에는 정말 이런 일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물론 사업 경험도 없었고요. 과학자도 아니었습니다. 한 번에 한 단계씩! 저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습니다. 


1986년 세계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그녀의 마을은 체르노빌과 가까이에 있었고, 그 재해의 여파가 그녀의 주변에 그리고 자식들에게 미칠까봐 두려웠다고 한다. 바로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핵에너지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그 사건 이후 에너지에 대한 정책과 산업이 바뀔 거라 생각했지만 변화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직접 나섰다. 1991년 지역 전련망을 사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협동조합형 전력회사를 세웠다. 초기엔 문제에 대한 심각성만을 깨닫고 있었지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했다. 하지만 하나 하나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와 같은 문제를 ‘혼자’가 아닌 여럿이 풀어나가고자 했다. 먼저 마을을 중심적으로 핵에너지, 화력에너지, 재생에너지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사업에 동참하길 설득했다. 결국 마을사람들 모두가 스스로의 에너지를 스스로 해결하는 데 동참을 했다. 현재 EWS는 전국 12만가구의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모든 에너지원은 태양열판, 풍력발전기, 소형발전기로부터 얻어진다. 이들 이윤의 일부는 녹색에너지 프로젝트를 운영하고자 하는 공동체를 교육하는 데 재투자된다.그녀가 세운 공영기업은 2010년 약 8억 2천만 유로의 자산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우르술라 슬라덱은 전 세계 풀뿌리 환경운동가에게 수여되는 골드만 환경상 2011년 유럽 부문을 수여하였다.[각주:2] 







출처 

[1] 베버리 슈왈츠 <체인지 메이커 혁명> 2013 

[2] 아쇼카 재단 홈페이지 http://korea.ashoka.org/

[3] 월간 문화연대(2004)

[4] REScoop.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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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01 작성



  1. http://www.ews-schoenau.de/ews/pressemitteilung.html [본문으로]
  2. http://www.goldmanprize.org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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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슈퍼마켙





도시는 소비만 하는 곳이잖아요.

이제는 어쩐지 빚을 진 기분이 들어요


하루 종일 꽂혀 있는 핸드폰 충전기,

점심시간에도 켜놓은 컴퓨터,

밤새도록 불 밝힌 빌딩에 흐르는 것이


다른 지역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면 괴로워져요


우리의 에너지 소비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돌아가질 

알면 저절로 아끼게 돼요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해요.










김소영 대표.


에너지슈퍼마켙은 주택에너지효율화 사업, 에너지진단 및 교육, LED, 태양광 시설 등


에너지 절약과 생산과 관련한 지원과 컨설팅을 하고 있는 마을기업입니다.




한번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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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1 작성



포토그래퍼인 지인이 해 준 이야기가 있다. 정말 좋은 사진은 사진 속 찰나의 감정이 말할 필요 없이 온전히 전해지는 거라고. 이번에 만난 Humans of seoul의 사진들은 찰나의 감정이 전해지는 것은 물론 그 이상의 울림이 있다. 서울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Humans of seoul. 정성균 편집장과 박기훈 아트디렉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Humans of seoul의 페이스북 페이지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이게 뭐지 했다가 사진과 짧은 글귀를 보는 순간 멍해지더군요. 분명 슬픈 감정이 아닌데 울컥하며 치밀어 오는 그 기분에 취해 꽤 오랜 시간 페이지에 머물렀답니다. Humans of seoul 프로젝트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Humans of Seoul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Humans of 도시 시리즈의 하나 입니다. 서울 사람들의 모습과 삶을 담아내는 프로젝트이지요. 더 간단히 말하면, 무작정 거리에 나가 낯선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그 분이 살아 온 이야기를 짧게 들어 봅니다(웃음). Humans of New York이 원조이고, 그 쪽은 벌써 200만이 넘는 독자들을 확보했습니다.

누군가는 인물 사진이나 사람 사는 이야기 쯤은 이미 다큐 사진이나 보도 사진으로 접할 수도 있고, 인터넷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는데요. Humans of Seoul의 목적은 보통의 미디어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상황의 모습보다 평범하지만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들을 들여다 보자는 데에 있습니다. 가령 행복이나 슬픔, 두려움, 희망 같은 걸 다루면서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 느낄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게 Humans of New York의 정신이기도 하구요. 집단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가치와 다양성이 종종 잊혀지고 효율만 중시되는 우리 사회를 경험하다 보니 Humans of Seoul 같은 걸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씀 드린 것처럼 인터뷰는 정말 기초적이면서도 우리를 완성하는 것을 보통 물어봐요.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그리고 힘겹게 했는지, 꿈이 무엇이고 무엇이 두려웠는지를 다루거든요. 이런 내용 외에도 사람들의 사소하면서도 다양한 모습을 발굴하면서 개인의 가치를 발견해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소개하면 굉장히 간단해 보이는데요. 실제로 인터뷰를 하다 보면 머리를 탁 치게 만드는 순간이 있어요. 오히려 저희가 배우는 점이 많다고 할까요?

한번은 공원에서 놀고 있던 꼬마 여자 아이 둘을 인터뷰 해서 어떻게 친한 친구가 되었냐고 물어 본 적이 있었어요. 들어보니 친구 되는 게 별 거 없다며, 학교에서 사다리 타기로 친구로 “결정”된 사이라고 하더군요(웃음). 물론 둘은 아주 살가운 친구 사이였고요.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걸 어려워하는 저에게는 무척 묘한 느낌을 주었어요. Humans of Seoul 이 아니었다면 절대 만날 수 없을 만한 상황이었겠지요.

[divide]

1월 11일자 Humans of Seoul 게시글

“어떻게 둘이 친한 친구가 됐어요?”
“별 거 없어요. 그냥 학교에서 사다리 타기 게임으로 친구로 정해졌어요.”

“How did you guys become close friends?”
“There was nothing special. We were just matched by a friend-matching-drawing in school.”[divide]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게 어렵다는 건 정말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Humans of seoul는 누가 하시는 건가요?

처음에는 편집장인 저와 박기훈 아트 디렉터가 함께 진행했어요. 회사 운영처럼 역할이 못 박힌 건 아니고, 수평적인 관계로 프로젝트를 끌어오고 있지요. 사실 저 타이틀들도 하고 싶은 직함 불러보라고 해서 붙여준 거에 가깝습니다(웃음). 최근에는 전담 원어민 영문 에디터도 추가 해서 그나마 조금 여유가 늘었습니다.

Humans of Seoul의 정성균 편집장

두 분의 관계가 궁금한데요,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10년 전이지요, 스무살 때 사진하며 만난 친구예요. 속칭 ‘구름투어’라는 걸 하며 정말 많은 곳을 사진을 찍으러 함께 다녔습니다. 구름투어는 구름처럼 바람 부는 대로 떠돌아다닌다고 해서 저희가 붙인 이름인데요(웃음). 가령 한 버스정류장에 오는 2번째 버스를 타서 13번째 정류장에 내린다든지, 아님 둘 중 아무나 ‘여기! 여기 내리자!’ 하면 후다닥 내려서 무작정 걸어 다니곤 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서로의 얘기를 잘 받아들여주는 그런 사이지만, 지금도 신기한 게 성격은 정 반대입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이 쌓였고 서로 원하는 바도 같아져 Humans of Seoul에 이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두 분의 오래된 우정에 부러운 마음이 듭니다. 본 업은 무엇인가요?

저(정성균 편집장)는 사진과 무관한 연구직 종사자고요(웃음). 박기훈 아트 디렉터는 패션사진일을 하고 있습니다. 본업과 Humans of Seoul 프로젝트는 사실 큰 관계가 없어요(웃음). 오히려 공공적인 목적이 더 강하고, 그래서 더 즐겁게 Humans of Seoul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두 분은 어떤 계기로 언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나요?

물론 Humans of New York가 가장 큰 영감을 주었지만, 막상 이걸 해보겠다는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보면 매우 논리적인 이유가 있진 않았어요(웃음). 사실 둘 모두 이 Humans of Seoul을 안 한다고 큰 손해가 나는 것도 아니고, 한다고 해서 엄청난 이익이 발생하지도 않습니다. 뭐랄까, Humans of New York을 보다가 설명하기 어려운 울컥했던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 Humans of New York을 안 건 지난 2013년 여름이었는데요. 그 땐 그냥 지나쳤어요. 그 뒤로 업데이트 되는 걸 보다 보니 설명하긴 어려운 데, 머리를 탁하고 치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부 준비를 좀 하다가 겨울에 서둘러 런칭을 했지요.

사실 그 때가 저희 둘 모두 다른 개인적인 일로 무척 바쁜 시기였어요. 그런데 프로젝트 공개를 한 후에 얼마 되지 않아 한 식당에서 존 레논의 액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진도 찍었는데요. 원래 프로젝트라는 건 그렇게 바쁜 일정 중에 예상치도 못 하게 시작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웃음). 많이 공감이 되더라구요.

Humans of Seoul에게 동기부여가 된 사진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에 갈등이나 반대 의견은 없었나요? 수익도 전혀 없고 하고 있는 일이 있으니 망설여졌을 법 한데요.  

앞에 말씀드렸던 그 울컥하는 마음이 든 다음에 제가 현 아트디렉터에게 전화를 해서 짧게 프로젝트 개요를 알려주고 핸드폰으로 Humans of New York 프로젝트를 보내줬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하겠다고 답을 들었고요.

사실 사진 자체는 예술에 가까운 일이라서 이걸 도대체 왜 하는 지 질문을 던질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Humans of Seoul은 목적이 분명했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매력적인 프로젝트였기에 의문은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파트너와 제가 오래된 친구다 보니까 서로의 역량에 대해서도 워낙 잘 알고 있었고요. 

시작 단계에서는 갈등이라고 하기 보다는 토의가 매우 많았어요. 사실 지금도 굉장히 많습니다(웃음). 둘이 나눠서 길거리 촬영을 할 예정이어서 사전에 사진 스타일이라든지 인터뷰 방향에 대해서 어느 정도 합의가 필요했는데,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 하다 보니 합의가 아니라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둘 다 전문 편집자도 아니었고, 거의 ‘도를 아십니까’ 수준으로 길거리에서 사람을 잡아야 하는 지라(웃음) 난관에 봉착할 때가 많았어요. 더구나 이건 매일 결과를 내야 하는 프로젝트거든요. 어떻게 더 낯선 사람의 이야기를 잘 끌어낼까 밤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은데요. 어떤 사명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신가요?

저희는 일종의 차력사입니다(웃음). 차력이라는 말이 “주변에서 힘을 빌리다”라는 한자어인데요. 저희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게 아니라 참여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기 때문에 저희는 차력사라고 가끔 생각하곤 합니다. 이 차력쇼에는 동네 주민들만 오시는 게 아니라, 소문을 듣고 옆 동네 사람들도 오고 있어요. 동네 주민은 내국인이고 옆 동네 사람들은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웃음). Humans of 시리즈들이 대개 영어로 진행되거나 영어를 같이 제공하기 때문에 이런 방문은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아직도 “Do you like Kimchi?”, “Do you know Samsung?” “Do you know Yuna Kim?”, “Do you know PSY?” 같은 질문을 외국인에게 던지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서 우리를 대표하는 건 우리의 상품이나 스타가 아닌 우리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서울 사람들에 대한 모종의 에너지 넘치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크지 않더라도 한번 기여해보자 하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뉴요커가 있고 파리지엥이 있듯 말이죠(웃음). 

Humans of Seoul의 박기훈 아트디렉터

인터뷰는 주로 언제 나가시나요? 

저희는 본업이 있기 때문에 주말에 인터뷰를 몰아서 하고 있습니다. 주말 중 하루는 반드시 둘 중 한 명이 거리로 출동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지요. 문제가 되는 건 비 오는 주말입니다. 아무래도 우산 쓴 사람을 접근하는 게 쉽지 않고, 비라는 특수 상황에서 섭외된 행인이 불편함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지라 주말에 비가 안 오길 항상 고대합니다(하).

 두 분의 주말을 반납하시는군요(웃음). 인터뷰이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인터뷰이를 선정하는 기준은 딱히 없습니다. 그냥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바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을 위주로 대화를 시도합니다. 인터뷰 성공 확률이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저희가 사람을 가릴 처지가 아니예요(웃음).

한번은 집에서 지하철역로 걸어 가다가 사람이 보이는 족족 말을 걸어본 적도 있었어요(웃음). 그 외에도 길을 가다가 개성이 보이는 사람에 접근하는 일이 많은데, 어떨 땐 소속사가 있는 친구들이라서 거절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인상이 좋아 보이는 사람이라고 인터뷰를 잘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가끔 거절을 받으면서 인상에 관한 모종의 편견을 깨기도 하지요. 

인터뷰를 요청할 때는 어떻게 요청하나요?

언론도 아니고 순수 예술도 아니기 때문에 인터뷰 요청할 때 인터뷰이가 이게 도대체 뭐하는 프로젝트인지 단박에 이해하지 못 할 때가 많습니다. 초창기에는 일종의 예술 프로젝트 같은 걸 한다고 설명하기도 하다가, “예술 몰라요” 이런 답까지 들어가면서 거절 당한 적도 있고, “서울의 사람 박물관” 같은 걸 만든다면서 접근하기도 했는데 썩 설득력이 있진 않았습니다.

요즘은 그냥 처음부터 Humans of New York 이야기를 하는데 나름 통하는 느낌이에요. 사실 Humans of New York 이 뭔지 모를 분들이 다수기 때문에 마치 못 알아들은 영어에 Yes 하고 외치는 상황 같이 대강 넘어가주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웃음).  

저라면 바로 오케이 할텐데요(웃음). 거절하는 분들의 이유는 무엇이고 대응은 어떻게 하시나요?

남녀노소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노(老)입니다. 노년층 인터뷰는 공을 많이 들여서 섭외해야 성공해요. 그런데 그 분들만큼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없습니다(웃음). 장년층도 쉽진 않아요. 거절도 개인의 선택이고 하도 거절을 많이 당해봐서 요즘은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얼굴이 인터넷에 나간다는 게 부담스럽고, 인터넷에 워낙 악플로 시끄러운 일이 많아서 이해가 될 법도 합니다만, 왜 나이가 많을수록 자신의 얼굴과 생각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는 사회가 되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사회가 된 이유, 의미있는 말이네요. 혹 위험했던 적은 없었나요?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해외의 시리즈에 비해서 밤 늦게도 촬영을 쉽게 한다는 게 Humans of Seoul 활동의 큰 장점 아닐까요(웃음).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누구인가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으리라 생각하는데 소개 부탁드려요.

올해 71살이 되신 한 할머니가 머리 염색을 알록달록하게 하시고 지팡이까지 짚어가시며 지드래곤 콘서트에 오신 거예요. 그런데 표를 못 구하셔서 공연장 앞에 멀뚱히 서 계시는 걸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사진이 잘 안 나와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 어떤 사진보다도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웃음). 자기의 미래 모습이라는 코멘트도 많았고 멋지다는 이야기가 줄을 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표를 대신 예매해드리자는 발언까지 나오기도 했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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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자 Humans of Seoul 게시글

“내가 45년생이라 지팡이까지 짚고 지드래곤 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표가 매진됐네.
젊은이, 혹시 남은 표 가진 거 없나?”

“I was born in 1945. I had to depend on my cane to come here to see G. Dragon, but the concert tickets were sold out.
Hey young man, do you have any spare tickets?”[divide]

페이스북 페이지 외 외부 사이트에 영문으로도 게재하고 있던데요.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의외로 페이스북을 안 하시는 분도 많아서 별도의 페이지가 필요했습니다. 검색 노출 측면도 있겠지만, 글로벌한 프로젝트라서 영문을 우선으로 하는 페이지를 별도로 준비했습니다. 국내 분이라면 페이스북에 오셔서 좋아요 후 계속 업데이트 되는 내용을 받아보시는 게 훨씬 편할 거예요. 

앞으로 Humans of seoul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 프로젝트는 꾸준함이 생명입니다. Humans of New York도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거든요. 저희도 좀 더 많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데 앞으로 계속 노력할 예정입니다. 몇 가지 더 아이템이 있긴 한데, 그건 오픈되고 나서 말씀드릴게요(웃음)!

저희 또 만나야겠군요(웃음). Humans of seoul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소시민이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와 얼굴을 대중에게 떳떳하게 보여 준다는 건 사실 대단한 용기입니다. 비록 사진 속 사람 역시 독자들에겐 낯선 사람에 불과하지만 사진 속 인터뷰이에게 페이스북 좋아요와 덧글만큼 큰 힘이 되는 게 없습니다. 독자들의 작은 용기들을 항상 응원하고 싶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덧붙일 내용이 있으시다면요?

“삶이 있는 삶”, 저희는 그것을 모토로 하고 있습니다. Humans of Seoul이 정신 없이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쉽게 매몰되곤 했던 삶의 가치와 이유들을 한 켠에서 조금이나마 조명할 수 있길 소망 합니다. 혹시 길거리에서 저희를 만나더라도 피하지 말아 주세요. 해치지 않아요(웃음). 

(웃음)여담입니다만, Humans of Seoul의 인터뷰이가 될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자주 가시는 장소라던지요.

서울이 너무 크다보니 저희를 만날 확률이 매우 낮을 것 같습니다(웃음). 아직까진 같은 장소를 가 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확률을 좀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대낮에 주위에서 욕할 정도의 의상을 입고 광장 같은 데를 어슬렁 거리면 되지 않을까요(웃음)?

저도 참고하겠습니다(웃음). 귀한 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울림있는 Humans of Seoul이 되길 응원하겠습니다. 

정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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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자 Humans of Seoul 게시글

“전 삶의 기본은 고통이라고 믿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행복이라는 건, 저에게 무지개처럼 빛나며 떠올라요.
언제 그렇냐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먹을 때.” 

“I believe that life is full of pain. For me, happiness appears like a rainbow about to rise over the horizon.
It usually happens when I meet someone I like and eat something I enjoy.”[divide]


출처 - http://platum.kr/archives/17657


《 박이문 선생(84)은 평생을 '앎과 지식에 대한 추구'로만 일관한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이 시대 흔치 않은 진정한 학자상을보여준다. 지난해 말 사회학자 정수복 선생은 박이문 평전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를 펴냈다.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의 평전은 이례적이다. 정 선생은 '왜 박이문인가?'라는 제목의 책 서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

'박이문의 삶과 학문세계는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릴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삶의 의미에 목말라하는 젊은이들은 8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한 노학자의 삶에서 감동을 느끼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담백하고 맑은 표정의 박이문 선생. 그는 "인생에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허무주의자이지만 매 순간 다가오던 삶의 위기를 극복하며 살려고 했던 점에서 긍정론자"라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책에 인용된 연세대 철학과 이승종 교수의 말도 울림이 크다. '참인간으로서의 박이문, 모든 세속적 가치를 멀리하고 진리의 추구라는 오직 한길만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걸어온 그의 고결한 인생은 이 땅의 모든 철학도에게 큰 귀감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문화부 기자 시절부터 시작된 박 선생과의 인연은 지난 10여 년 동안 식사나 차담(茶談)을 나누며 이어져왔다. 기자가 본 박 선생의 삶은 이 교수의 말처럼 '청빈에 가까운 수도자적 삶'이었다. 무엇보다 매번 기자를 감동시킨 것은 그의 겸손과 호기심이었다. 선생은 묻기보다 듣기를 좋아했으며 때로 세상에 대한 실망과 안타까움을 말하는 기자에게 늘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환한 미소와 언어로 다독여주곤 했다.

대한민국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 80대 노철학자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경기 고양시 일산 문촌마을, 그가 사는 아파트의 초인종을 눌렀을 때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얼굴에 함박웃음을 띠며 문을 열어주었다. 옆에는 단아한 표정의 부인 유영숙 여사가 서 있었다.

박 선생은 한눈에 보기에도 몸무게가 많이 줄어 있었다. 2년 전 뇌경색을 앓은 이후 다소 회복은 되었지만 바깥 생활은 거의 못한다고 했다. 유 여사는 "귀가 어두워져 보청기 빼면 잘 못 알아들으신다. 손가락에 힘이 없어 타자도 못 치신다. TV 켜는 법, 토스터 사용하는 법도 잊어버리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철학 이야기만큼은 연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신다. 의사도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얼굴이 더 평화로워지셨다"고 하자 "편찮으신 뒤부터 오히려 마음 상태가 평화로우신 것 같다"고 부인은 다시 일러주었다. 박 선생에게 "하루 일상이 어떤지" 여쭙자 "늙은 부부가 하루 종일 같이 있지. TV 보고 산책하고…. 일산을 떠난 기억이 별로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선생의 말투는 느릿했고 나직했으며 단답형으로 자주 끊어졌다. 이번 인터뷰는 그의 마음과 생각을 제일 잘 아는 부인의 부연 설명과 정 선생의 평전이 큰 도움이 되었다.

―몸이 불편해지면 마음도 약해지는 법인데…괜찮으세요.

"그저 그러려니 합니다. 지금도 써야 할 글이 많아서 딱 10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는데. 철학도 정리할 게 아직 남아있고 시도 수필도 더 쓰고 싶은 게 있는데."

―죽음이 싫거나 두렵지는 않으세요.

"두렵다기보다…아쉽지요. 아직도 구경할 것이 많은데."

그가 말한 '구경'이란 표현에선 삶에 대한 애착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 초연하게 삶과 죽음을 대해 온 노철학자의 생각이 묻어나는 단어였다.

몇 년 전 민음사에서 펴낸 그의 책 '아직 끝나지 않은 길'에 삽입된 '미리 써본 유서'라는 글에는 죽음에 대한 선생의 생각이 잘 담겨 있다.

'추한 것도 많았지만 아름다운 것도 많았지요. 미운 것도 많았지만 예쁜 것도 많았지요. 가난하지만 힘껏 살았소. 짧았지만 오래 살았소. 오래 살았지만 꿈같은 시간이었소. 후회한들 무엇하랴. 힘이 닿는 데까지 살았다오. 이제 아주 나쁜 것도 좋소, 모든 게 좋소. 추한 것도 아름답소. 모든 게 아름답소. 후회도 소망도 없이. 아쉬움도 충만도 없이 그냥 담백하고 맑게 가라앉은 심정으로 모든 것과 조용히 화해한 심정이오.'

―남에게 폐가 되니 부고도 내지 말고 장례식도 번거롭다 쓰셨어요. 화장(火葬)해달라고도 하셨고요. 생각에 변함은 없으신가요.

"물론이죠. 근데 화장 생각은 좀 바꾸었어요. 세브란스병원에 시신 기증을 등록했거든요. 화장하면 그저 (내 몸을) 버리는 것이지만 시신 기증은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항상 몸에 시신 기증 카드를 지니고 있습니다. 죽으면 금방 병원으로 실려 가게 되어 있어요."

그는 총 15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저작을 남긴 철학자이다. 500여 편의 시를 쓴 시인이기도 하며 수필이 고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미국 시먼스 칼리지(1970∼1991년) 포항공대(∼2000년), 연세대(∼2010년)에서 교수를 지냈지만 "뜬구름 잡는 강단철학은 경멸한다"며 평생 어느 단체에 속하지 않고 홀로 공부하고 썼다.

―남들은 못해서 안달인 대학교수 자리(이화여대 불문과)를 박차고 30대 초반인 1961년 프랑스로 혈혈단신 유학을 떠났지요. 왜 한국을 떠나셨나요.

"61년인데 그해 5·16쿠데타가 났지요. 계속 한국에서 살다가는 사람답게 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부의 유혹도 있을 것 같았고 대학에서 보직을 맡으라고 할 수도 있고. 그럭저럭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다 보면 공부는 더 어려울 것 같기도 했고. 도망치고 싶은 심리도 있었지요. 전쟁통에 서울대 불문과에 들어가 석사학위를 받자마자 1957년 이화여대 교수가 되었는데 성에 차지 않았어요. 돌이켜보면 허황되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을 모두 알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의 소르본대 불문학 박사학위논문이 프랑스에서 출판되었을 때 파리에 유학 중이던 일본 불문학자 하스미 시게히코는 책을 서점에서 접하고 저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동양인도 이런 논문을 쓸 수 있구나"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정수복 책).

―그래서 이제 근본적인 것에 대한 답을 찾으셨나요.

"평생 노력했지만 인생의 궁극적 의미 같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답이 없다는 답을 알게 된 거죠. 사실 인생의 의미가 뭐냐 하는 물음은 성립이 안 됩니다. 어떤 면에선 그걸 찾으려는 노력조차 헛됩니다. 하지만 '인생에서의 의미'는 가능합니다."

―그것은 뭔가요.

"각자 살아가면서 자기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찾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인생 자체의 의미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허무주의자입니다. 하지만 매 순간 내게 다가오던 위기를 극복하면서 살려고 했다는 점에서 긍정론자라고 할 수 있지요."

―좋은 대학(서울대 불문과)을 나오고 그 어렵다는 박사학위도 두 개(프랑스 문학박사, 미국 철학박사)나 따셨는데 부나 명예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사셨어요. 후회는 없나요.

"누구나 그렇듯 모든 길을 다 걸어갈 수는 없지요. 나 역시 갈등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그때마다 '지적 탐구'라는 여정을 걸으며 가장 옳고 보람 있는 삶을 살려는 의지만은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앎을 추구하기에만도 시간이 너무 모자랐어요."

1930년생인 선생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6·25전쟁을 고스란히 겪은 세대이다. 한국어를 포함해 일본어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까지 5개 언어를 읽고 쓰는 데 문제가 없다.

미국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면서 노장(老莊)사상에도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는 그는 이에 관한 책도 몇 권 펴냈다.

―동서양의 철학을 두루 섭렵했지만 인생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무위(無爲)의 삶을 살려는 노력, 삶에 대한 환상이나 착각에서 벗어나 도(道)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쪽으로 많이 기울었습니다.

"무위적 삶의 태도는 단순히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흐름에 따라 산다는 점에서 가장 실천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노장은 자연을 정복해서 우리 욕망에 굴복시키며 물질적 안위를 채우는 대신 바람처럼 물처럼 골짜기 냇물처럼 자연을 따라 살라고 가르치지요.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혹은 살아가기 위해 겪는 모든 고충과 비극을 슬픔이 아닌 하나의 희극으로 보라고 합니다. 어때요. 너무 멋지지 않나요."

그가 소년처럼 맑은 얼굴로 기자에게 되물었다. 기자는 대답 대신 '존재 자체만으로도 울림이 되는 큰 어른이 있다면 박이문 선생 같은 사람일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요즘 갈 길을 잃어 방황하는 청춘이 많습니다.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젊은 사람들한테 좋은 말 해달라고 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자신도 없고…요즘 젊은 애들 참 안됐습니다. 경쟁이 너무 치열하지 않은가요. 우리나라처럼 '파이팅' 같은 말을 자주 외치는 나라도 없어요. 계속 싸우라고, 가만히 있으면 빼앗긴다고 주변에서 외쳐대지요. 사는 모습들이 너무 힘들어 보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누가 지시하고 이끄는 대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면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어차피 한 번밖에 못 사는 인생 아닌가요. 뭐든지 강제와 강요는 안 됩니다."

―인생에 답이 없다고 하면 너무 허무한 거 아닌가요.

"진정한 허무주의자라면 태연하게 받아들일 겁니다. 모든 것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만이 절망하지 않습니다."

알 듯 모를 듯 선문답(禪問答) 같은 대화였지만 "인생과 진리에 답이 있다"며 환상과 거짓을 파는 사람이 너무 많은 세상이어서 그런지 "답이 없다"는 그의 말이 오히려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출처 - http://media.daum.net/editorial/column/newsview?newsid=20140714030630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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